[반갑습니다. 저는 이렇게 갈테니, 먼저 가도 돼요.]

08

by 고봉수

가장 처음으로 마음에 두고 써 내려갔던 [생각의 정리]의 마지막 글에, "무엇을 적으면 좋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평소에는 단어 혹은 사진을 보면 무엇을 쓸지 빠르게 생각이 나서 바로바로 적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꽤나 오랜 시간 허공을 바라봤습니다.


"갑자기 스치는 아이디어나 혹은 단어는 없을까? 아니면 노래를 들어볼까?" 하면서 시간을 천천히 흘려보냈습니다.


아무래도 다음 Chapter를 위한 마지막 글이라고 생각을 하니 뭔가 조금은 진지해져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재미라고는 1도 없이 항상 진지했네요. 그래도 모든 글에는 저의 진정성이 담겨있었으니까 이렇게나마 조금은 양해를 구합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 사진에 애정을 담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공간과 일상에 대한 저만의 시선 이미 4가지의 카테고리를 통해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하니 펜이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답답함 그리고 뭔가 정말 중요한 것을 마지막에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하는 특이한 시간이었습니다.

[a. 원래는 '공간의 정리' 카테고리에서 전달하려고 했던,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의 물방울 조형물. 사진 그대로 멋진 하나의 작품이지만 무엇보다도 이 모양 (Shape)을 위해 평생을 바친 예술가의 그 '진정성'은 이렇듯 아름다운 '영롱함'으로 승화됩니다.]


위 설명과 같이 '공간의 정리'를 통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물방울 작품'의 사진을 무심코 바라보았습니다.


지난 제주도 여행에서 굉장히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던 미술관이어서 '언젠가는 써야지'라고 준비했던 그런 사진이었습니다. 총 7장의 사진을 천천히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진정성은 어디로 흐르고 있을까? 그 방향도 속도도 그리고 가야 할 거리도 모르겠지만."


조금은 추상적인 의문에 명확한 답은 당연히 없습니다. 그저 제 머릿속에서 흘러나온 하나의 조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의문입니다. 인생을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저만의 '그럴듯한 대답'을 가지고 있어야 할 그런 중요한 질문이었습니다.


아마도 스스로 알고는 있었지만 너무나 추상적인 생각에 잠시 현실의 뒤에 넣어두었던 질문. 지금 당장 내놓을 수 없는 명쾌한 대답, 그 어려움 앞에 조금은 두렵기도 했을지도 모릅니다. 막연함이겠죠?” 그럴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b. 물방울을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시간에 배운 물리 수업이 떠오릅니다. '표면장력'과 '중력'의 팽팽한 경쟁이 만들어낸 자연의 섭리. 그 안에는 중간에서 조화를 이루려는 '적당함'이 존재합니다. 그 적당함이 만든 물방울은 참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그런 진정성 앞에, 저를 돌아봤던 같습니다. "나는 적당한 포물선을 그리며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33살의 나에게는 어떠한 진정성이 남아있을까?" 이런 고리타분한 질문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느 방송에서 봤던 것처럼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앞으로 쭉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막상 뒤를 돌아보면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고 있더라, 우리의 인생도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올바르게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뒤를 돌아보면 아닐 수도 있는 그런 것이요.'라는 이야기가 마음속에 탁 들어옵니다.

하지만, 오래 생각을 함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대답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의문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명쾌한 해답을 찾기 전에 일단은, 제가 살아갈 인생에 대해서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싶은지 조금은 남겨두려고 합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게 최선인 것 같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c. 같은 화학적 성질을 가진 물이지만 그 물리적 형태는 천차만별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를 구성하는 화학적 요소는 같지만 각자의 개인을 구성하는 물리적인 무언가는 하나도 같지 않다. 그런 점에서 세상은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인생은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어보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딱 하나 있습니다. 가수 '에일리'씨의 명언으로도 유명한 그 글귀입니다.



Life is about waiting for the right moment to act.
They are in their time zone and you are in yours. So, Relax.

번역을 하자면, "인생은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한 적절한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 각자의 시간대가 있고 당신은 당신만의 시간대가 있다. 그러니 긴장하지 마라." 참, 멋진 말입니다.


이 글귀를 처음 보면서 정말 신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보내온 '삶의 궤적이 잘못되지 않았구나'하고 뭔가 응원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누군가가 저를 (혹은 글을 읽는 당신을) 앞서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또 어떤 누군가는 저보다 (혹은 당신보다) 뒤처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두 자기 자신만의 인생을, 자기 자신만의 시간대에서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이상, 이하의 차이도 없습니다. 정도만큼의 차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부러워하지도 너무 무시하지도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d. 예술가에게도 이런 시간대는 동일하게 적용을 할 것 같습니다. 수많은 그림을 혹은 조형물을 만들어가며 걸어 나가는 그 시간에는 이런 진정성이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그리고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그렇게 쌓여나간 진정성이 예술가의 인생 자체를 설명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저도 제 인생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제가 가진 시간대를 그리고 그 순간을 묵묵히 걸어가며, 진정성을 하나하나 저의 어딘가에 쌓아나가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무심코 뒤를 돌아봐도 그게 직진의 반듯한 길이었는지 아닌지 상관없이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알차게도 살아왔구나. 긴장하지 말고 다시 걸어가자."


이런 마음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충분하다고 표현을 했지만 너무나 기분 좋은 순간일 것 같습니다. 그 순간에는 눈물이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됐든 저라는 사람이 걸어온 길에 웃음을 지을 수 있는 1명이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 이니까요.)

[e. '표면장력'과 '중력'의 사이에서 '적당함'을 유지한 결과로써 '물방울'을 이해하려는 접근은 아무래도 차갑기만 합니다. 과학적으로 올바른 해석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자체로써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찌 됐든 우주에 작용하는 모든 힘을 하나로 합쳐 완성한 그 자체니까요.]


그런 점에서 조금은 긴 이야기를 뒤로하고 제목과 같이 [생각의 정리]를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 만나는 또는 언젠가 만날지도 모르는 모든 분들에게는 반갑다고 인사를 하고싶습니다.


저는 정도의 속도로 저만의 시간대를 걸어가고 있으니 혹시 제가 느리다면 먼저 가셔도 됩니다.


혹은 제가 너무 빠르다면 천천히 안전하게만 오시길 바랍니다.


각자의 앞에 놓인 길에 그리고 우리가 가려고 하는 방향에 진심을 담은 진정성이 담겨있다면, 우리의 궤적은 아름다울 같아요.


어디에 계시든 멀리서 응원합니다."


#생각의정리 #반갑습니다저는이렇게갈테니먼저가도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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