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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기다린 주말을 맞이해서 엄마와 누나 그리고 조카, 정우와 함께 드라이브를 갔다. 원래 주말에는 조금 쉴 생각이었지만 엄마의 옷 자랑에 자리를 만들어 줘야 할 것 같아서 카페를 찾아갔다. 엄마의 옷 자랑은 가끔 나한테 암묵적으로 "누구에게 좀 보여주고 싶다."라고 들릴 때가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저번 주 엄마가 코트를 한 벌 샀는데 매일 거울 앞에서 이렇게 입어보고 또다시 벗었다가 저렇게 입어보고 나름의 핏을 체크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 산 코트가 저리도 좋을까? 싶다가, 예전에 내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2013년 1월, 강남역으로 첫 출근을 하면서 마련한 정장을 보면서 하루빨리 사무실에 가고 싶다는 그런 모습.
누가 보면 그저 한 명의 직장인이겠지만 나한테 있어 그 당일은 강남역 인근의 회사원이 되는 그런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기 때문에 나름의 설렘과 상상이 함께 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분명 정장을 입은 나를 하루빨리 그 강남역이라는 환경에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도 아마 비슷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새로 산 코트를 입은 그리고 거울에 비친 마음에 드는 엄마의 모습. 그 모습은 집에만 있을 것이 아니라 어느 환경에, 어느 장소에, 그곳에 있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드니 엄마를 어디 좋은 카페로 데려가면 좋을 것 같았다. 예전에 읽은 책에 그런 말도 있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데, 아직 토요일 오후밖에 안됐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 이런 생각으로 찾은 곳이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차덕분"이라는 찻집이었다. 카페도 좋지만 건강도 생각하고 또 이색적인 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연하게 누나와 조카, 정우도 같이 온다고 하니 정우에게도 좀 색다른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고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의 출렁거림과 그 파란 물결은 정우에게 뭐라도 조금은 감성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었다.
[a. 차덕분이라는 상호처럼 전통찻집인데 인테리어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여백의 미가 느껴질 정도]
[b. 안에 있는 소품도 굉장히 특색 있는데, 파는 것도 있으니 차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한 번 가보면 좋을 것 같다.]
막상 도착을 하니, 조금 놀랐던 건 부산의 한 수산시장과 같은 빌딩 위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어쩐지 검색을 해보니 전부 내부만 나오고 외관은 나오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때는 살짝, 잘못 왔나? 싶기도 했는데 일단 먼 걸음을 통해서 왔으니 차라도 한 잔 할 생각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그러나, 내부는 정말 멋진 곳이었다. 밖과는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 그리고 공간의 여백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일반적으로 요즘의 상권은 (혹은 주거 단지는) 한정된 공간 안에 최대한 이것저것 배치하여 활용도를 높이려고 하는데 차덕분은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 그리고 오더를 하는 곳과 공간을 분리하여 조금 그 여유가 느껴지도록 만든 것 같았다. 물론 사람들이 하나하나 방문을 하면서는 그 여유가 자연스럽게 복잡해지지만 그렇지만 않으면 찻집 + 여유를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c. 인테리어 소품도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센스가 넘쳤다.]
가서 마신 것은 "애기설국(브랜드 메뉴인 것 같다.)"으로 검색을 통해서 가장 많이 마신다고 해서 선택을 했지만 직원분이 서빙을 해주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셔서 왜 애기설국인지 이해가 됐다. 그게 뭐냐면, 해발고도 3,000미터 눈 속에서 태어나 피지 못하고 죽은(?) 꽃송이들을 사용하여 차를 우린 것인데 조금 슬픈 내용이기도 하지만 대신 그 꽃 송이가 따듯한 물 안에서는 뜨겁게 피어올라 그 향을 전달해주기 때문에 다시 태어났다는 느낌을 들었다. (어디까지나 제 주관적인 느낌이라.. 무엇보다 맛있는 차였습니다.)
매일 커피와의 하루를 시작하는 요즘에 있어 차를 마셔봤다는 점 그리고 엄마에게 새 옷을 자랑할 하루를 선물했다는 점에서 얼마 없는 주말이지만 나름 행복한 하루였다. 커피에 지친 분들이 있다면 때로는 이런 공간에 방문해서 지친 몸에 그리고 마음에 다른 풍경을 선물하시기를 바라면서 "차덕분"에 대한 주관적인 애정을 그만 줄이겠습니다.
공간의 정리만 적으려고 하다가, 조카인 정우에 대해서 생각이 나서 짧게 그 감정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2018년 3월 조카가 태어났다.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에 퇴근을 하고 누나가 있는 병원으로 가는 길에도 그리고 누나에게 줄 선물을 사는 중에도 솔직히 조카, 정우에 대한 생각은 많지 않았다.
그저 아기가 한 명 있겠구나, 어떤 모습일까?
이 정도였을 것이다. 근데 지금의 정우는 그저 한 명의 아기가 아니라, Only the one인 것 같다.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정우는 소중하다.
[d. 벌써 정우가 2살이라니... 너무 빨리 자라는 것 같아서 이러다가 금방 나와 같은 아재가 될 것 같다.]
작년 3월을 시작으로 우리 가족의 모든 관심은 정우에게 맞춰지는 것 같다. 가족이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 눈에는 너무나 귀엽고 일반적인 아기 같지 않게 뭔가 촌스러움이 묻어나서 좋다. 웃는 것도 그렇고 뭔가 그런 컨츄리틱한 느낌이 너무나 가득하다. 그래도 정말 귀엽다.
그런 정우를 가끔 보면, 얘가 지금의 나와 같은 30대가 되었을 때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한다. 30년 전의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조금은 이해해줄까? 아니면 그건 모르겠고 세상 살기 바쁘다 일까? 무엇이 돼도 솔직한 마음으로는 괜찮다. 그때 나는 60대 할아버지고 수염이 가득 자란 정우도 한 명의 어른일 테니까.
그래도 우리 아빠, 엄마가 줬던 그 관심만은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 표현을 하지는 않더라도 그때 그런 관심을 받으면서 자란 게 바로 나구나 그리고 그런 관심과 사랑을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구나 하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빠의 술주정에도 그리고 엄마의 핸드폰 사진첩에도 항상 정우가 있어 뭔가 그 즐거움을 주는 것 같아 그 모습, 그 사실만으로도 정우에게 가장 고맙다. 우리 아빠, 엄마의 아들로서 정우에게 가장 고맙다. 건강하게만 그리고 지금처럼 컨츄리틱하게만 잘 자라 다오. 조카, 정우.
#공간의정리 #차덕분그리고조카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