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살라와 리빙코랄 그리고 그 해 여름.

01-15 Marsala 18-1438

by 고봉수

그녀는 재미있어했다. 적어도 이해가 안 가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마치 언젠가 마주해야 할 상황으로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색채를 찾아준다... 역시 재미있어요. 선생님, 저는 어떤 색이 어울릴까요? 아니면 저에게도 그런 색이란 게 존재는 할까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를 나의 이야기에 아무런 의심도 없이.


“지금 당장 제가 ‘무슨 색이 어울린다’ 혹은 ‘당신은 무슨 색입니다’ 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다만, 대화를 통해서 그리고 시간을 들여서 알아가고 싶어요.”


무엇을 알고 싶은 거예요? 시간을 들인 대화를 통해서요.” 라는 그녀의 질문에 어디서부터 말을 이어나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어디까지나 그녀의 아버지가 받은 철저히 주관적인 느낌으로 인해 여기까지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 느낌 자체가 한쪽으로 치우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회장님은 지금 따님께서 ‘본연의 색’을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없지만 하나의 실감으로써 꽤 확실하게 느껴진다고 해요.”


"그래서 선생님을 저한테 보낸 거고요? 그 잃어가고 있는 색을 찾기 위해서... 맞죠?"


“네, 어느 정도는 그런 맥락입니다. 웃기는 이유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장난 삼아 혹은 그저 부탁이니까 대충 생각하고 온 것은 아니에요. 그의 말에 공감을 한 것은 진심입니다.” 그녀에게 솔직히 말을 했다.

“알겠어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아빠의 말도 이해는 가요.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거든요. 하나의 확실한 감각으로, 그건 역시 부인할 수 없네요.” 라고 말하며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안에는 어딘지 모를 슬픔이 남아있었다.


부인할 수 없다… 괜찮다면, 그 이유를 좀 알 수 있을까요? 왜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게 됐는지요.”


“그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어요. 바로 저 창문을 통해서요. 형태도 그리고 어떠한 흐름도 없이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며 이 곳에 왔어요. 그리고는 어딘가에 남아서 천천히 저를 보았어요. 천천히 그 시간을 들여서.”


방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고요하게 들리는 숲의 흔들림이 조용한 이 공간을 감싸고 있었다.

형태도 그리고 어떠한 흐름도 없이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며. 그런 하나의 움직임을 가지며. 이 곳에 왔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그녀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저는 무언가를 잃어갔어요.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요. 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 결여가 가끔 저에게도 분명하게 느껴져요. 근데 그게 저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걸 예민한 감각으로 느낀 아빠한테는 어떨지 몰라도요.”


그녀의 말은 조금 비현실적이었다.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무언가가 저 창문을 통해 들어와서는 그녀의 안에 있던 것을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빼앗아갔다’ 라는 이해가 맞는 것인가? 모르겠다.


"제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혹시 지금 이 곳에 있나요? 결여를 가져온 무언가가?” 터무니없는 소리였지만 나는 그녀가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요, 그건 제 안에 있어요. 정확히 말하면, 저라는 공간 안에 남아있어요.”


내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그 순간, 그녀가 그렇게 대답을 하던 그 순간 나는 의식을 잃었다. 희미해져 가는 의식의 그 끝에 내 손을 잡은 그녀의 모습만 선명하게 남긴 채.


나는 숲의 흔들림이 느껴지는 '현실의 공간'을 벗어나 하나의 움직임을 가지며 형태도 그리고 그 어떠한 흐름도 존재하지 않는 '무채색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나의 의식과 그녀의 의식이 혼재한 그런 영역으로 나는 천천히 흘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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