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Greenery 15-0343
그건, 그저 그런 하루였다. 방금 내린 커피 그리고 그 커피를 담은 얼음잔의 온도가 물방울을 만들어내듯 자연스러운 여름날이었다.
아마도 한적한 오후였을까?
나뭇잎의 사이사이로 뜨거운 열기가 내려오며 차가운 아스팔트 도로를 녹였다. 무심코 그 위를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의 타이어는 몰랐을 온도가 거기에는 남아있었다. 그렇게 흩어져버린 열기는 어디로 가는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뜨거운 여름날, 한적한 오후가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게 참 웃기지 않아? 생각해보면 그냥 지구가 움직이기 때문인 거잖아. 근데 거기에 내 모든 걸 맞춘다고? 넌센스야, 넌센스."
A는 매번 이상한 질문을 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허공에 그런 의문을 던졌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불만을 가득 품은 A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이 돌아갔을지도 여전히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런 A에게 나 또한 성심성의껏 전부 대답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내가 그럴듯한 대답을 했어도 아마 A는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것이 분명하다.
가끔은 저런 이상한 질문들을 나에게 한 것이 아닐 거라고 생각할 정도다. 왜냐하면 단 한 번도 나에게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직접 물어본 적도 그리고 그 대답을 기다린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불만이 가득 담긴 A의 질문은 나름 괜찮은 답변을 가지지 못한 채, 그렇게 허공으로 사라졌다.
A와 나는 근처에 새로 생긴 미술관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평소에 미술관이나 뭐 이런 곳에 자주 찾아가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워낙 따분한 동네이기도 하고 또 여기에 없었던 무언가가 생겼다고 하니 한 번쯤은 구경을 가보고 싶어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화가의 그림을 혹은 어떤 형식의 전시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는 않았다. 일반적으로 '미술관에 간다'라는 것에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했을 그 목적이 우리에게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유명한 작가의 그림, 아니면 아예 아무것도 없다고 했어도 나는 미술관에 갔을 것 같다. A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미술관에 갔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있는데 불현듯, 좀 전에 A가 던진 그 질문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답이 떠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참 웃긴 질문이었다.'정도의 생각만 짧게 스쳐 지나갔다. 아무것도 아닌 딱, 그 정도의 순간이었다.
"참 웃긴 질문이었어, A."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질문?"이라고 A는 모든 걸 까먹은 것 같이 대답을 했다. 정말 다 까먹은 건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됐다. 왜냐하면 귀찮게 모든 걸 다시 설명해야 할지도 몰라서였다.
그 질문은 뭐였는지, 언제 했는지, 그리고 내가 왜 웃긴 질문이라고 말을 했는지 등 모든 게 피곤해질 것 같았다.
"아, 아니야. 됐어 그럼. 그냥 잊어."라고 서둘러 대답을 했다. 그리고는 또 무슨 질문을 할까 봐,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여기에 없었던, 혹은 존재를 한 적이 없었던 그 미술관으로 나는 발걸음을 향했다. 거기에는 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뭐가 없어도 상관없을 그런 미술관으로 우리는 빠르게 걸어갔다.
A의 참 웃긴 질문처럼, 나의 발걸음도 적절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 채 그렇게 허공으로 서서히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