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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봉수 Apr 25. 2021

한적한, 오후의 그린.

02 Greenery 15-0343

꽤나 빨랐던 발걸음 때문이었는지, 멀리서나마 미술관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수년간 빈 공터였던 그곳에 들어선 것이 미술관이라는 점도 신기했지만 나무 사이사이 아무것도 없었던 허공에 무언가가, 어떠한 형태를 가진 건축물이 보인다는 점이 상당히 어색했다.


분명, 매일 이 거리를 지나다니면서 한 번쯤은 바라보았을 텐데 어느 날 갑자기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모든 허공들이 가득하게 채워졌다는 어색함이 느껴졌다.


멀리서 바라본 미술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음, 뭐랄까... 어떤 형태를 가진 것이라고 단순하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맨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 그대로를 전하자면 '콘크리트의 덩어리가 땅 위에 놓여졌다.'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나에게는 조금은 생소한 모습이었다.


"저게 미술관인가?, A 보여?"


"음, 뭔가 독특한데. 일단, 마음에 들어. 뻔한 이 동네에 과분할 정도로 말이야." A는 고리타분한 이 동네에 뭔가 재미난 것이 들어왔다고 생각하면서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도 어느 정도 공감을 했다. 솔직히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이 곳이 재미있는 동네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거니와 또 중심가처럼 그럴듯한 가게나 몰(Mall)이 들어온 적도 없기 때문이다. A의 말처럼 누가 봐도 뻔한 동네가 맞았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의 발걸음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놓여진 콘크리트의 덩어리가 혹시 아직 완성이 안된 미술관은 아닐지 아니면 혹은 어쩌면 미술관이 아닌 다른 건물 일지 모른다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는 분명 오늘 아침에 신문에서 읽었던 내용과 그 기억은 확실했다.


'지역 주민의 문화, 교양을 위한 미술관 오픈(Open)'


미술관에서 어떠한 프로그램을 운영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않았지만 분명한 건, 오픈을 했다는 사실이 첫 페이지를 장식하며 소개가 되어있었다는 점이었다.


점과 선과 면을 가진 콘크리트 덩어리가 보였다. A에게 신선한 대상으로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조금 불안정해 보였다. 저렇게 커다란 덩어리가 어느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고.


"근데, 뭘 전시한다고?" A가 나에게 물었다.


"그게, 그것까지는 나와있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냥 신문에서 미술관이 오픈했다는 정도만 읽었어. 검색해볼까?" 갑작스러운 A의 질문에 나도 덩달아 궁금해졌다. 그리고 만약에 우리가 관람을 할 수 없는 작품이라던가, 아니면 입장료가 상당한 수준이라던가 등 별 걱정도 다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됐든 미술관에 왔으면 뭐라도 봐야 할 것만 같았다.


"아냐, 가면 뭐라도 있겠지 안 그래? 설마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신문에 광고를 하겠어? 일단 가자."


A의 말처럼, 미술관이 아니었던가? 그러면 뭐라도 보여줄 걸 마련해놨을 것이다. 그리고 신문의 제목과 같이 여기는 '지역 주민의 문화, 교양을 위한 미술관'이니까.


어디까지나 문화와 교양을 위한.  

      

2차선 정도의 도로를 건너, 우리는 미술관 입구에 도착을 했다. 거기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놓여져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만큼의 무게를 가진 미술관이 그동안 비워져 있던 허공을 가득하게 채우고 있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조용히 숨소리를 죽이며 서있던 A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묘한 긴장감이 놓여있었다. 하지만 그건 비단 A에게서만 보였던 긴장감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역시 그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뭔가, 뻔한 이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무게감이 그렇게 우리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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