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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봉수 May 02. 2021

한적한, 오후의 그린.

03 Greenery 15-0343

때로는 '무게감'을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가져야 적당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때로는 그 적당함을 넘어서야 할지도 모른다.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조형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짧은 기억 하나가 조금은 생소하게 나의 어딘가를 스쳐 지나갔다. 평소에는 어딘가에 묻어두고 덮어두었을 그런 기억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멍하니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보고 있던 나에게.


8년 전, 아마 그때의 기억이었을 것이다.


우수한 편은 아니었지만 결석이나 지각없이 성실하게 학교를 다녔다. 다른 누군가가 보았을 때는 '학교 생활이라는 게, 성실하게만 다니면 그걸로 괜찮지 않아?'라고 말하며 칭찬을 해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는 그건 너무나도 힘든 성실함이었다.


만약 다른 부분으로 나의 이 성실함을 대체할 수만 있었다면, 나는 학교에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말 그대로 학교에 가는 것은 나에게 그저 하나밖에 없는, 주어진 일상이었다. 학생으로서 견고하게 부여받은 하나의 일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그만큼의 성실함이었다.


하지만 성실함과 성적을 기준으로 판단되는 우수함에는 꽤 큰 괴리가 있었다. 즉, 공부에는 전혀 관심도 그리고 의욕도 없던 나였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수업 시간과 그 사이사이 주어지는 쉬는 시간의 연장선에서 나는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또, 그 시간을 채우기 위해(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하지도 않았던 것도 확실하다. 그저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의 텀을 재면서 7번, 8번 정도를 참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의 성실한 일상이었다.


그렇게 집에 가서는 하루 종일 음악을 들었다. 대부분은 클래식(Classic) 곡으로 방에 앉아서 이어폰을 끼고 새로운 곡을 매일매일 들었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곡이 있으면 기억을 해놓고 있다가 모든 노래가 끝이 나면 마지막을 장식하며 한 번 더 듣곤 했다.


'왜 클래식인가?'라고 물어본다면, 음 대답하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여러 장르의 음악을 듣다가 나에게 가장 적합한 하나의 종류로써 나는 '클래식'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거기에는 뭔가 그럴듯한 이유는 없다.


'어느 작곡가가 좋아서 혹은 어느 음악이 제 마음을 움직여서요.'하는 그런 그럴듯함이 나에게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음악이 좋은 이유에는 그럴듯한 하나가 있다. 가장 자연에 가까운 소리라는 점이었다. 인위적인 소리가 들어가지 않는 자연에 가까운 소리, 그게 이유였다.


자연에 100% 가까운 소리를 듣기 위함이라면 조용히 흐르는 시냇물 소리라던가 아니면 숲에서 부는 바람 등 이런 소리도 있겠지만 이건 음악이 아니니 그다음의 대상으로 생각한 것이 아마도 클래식 음악이었던 것 같다.


현을 튕기면서 퍼져 나오는 소리를 나무로 만든 통에 담는 것, 그게 내가 이해한 클래식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통에 담긴 울림은 자연에 최대한 가까운 소리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렇기 때문에 성실한 학교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집에서 하루 종일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때로는 학교 수업시간에도 교실 창 밖을 바라보며 전 날 들었던 클래식 음악을 떠올리기도 했다. 흩날리는 나뭇잎과 조용히 흔들리는 유리창 그리고 일정한 속도로 넘어가는 책을 하나의 소음으로 삼아 그 음악을 기억해냈다.         


정확히 100%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전 날 들었던 그 클래식 음악을 떠올렸다.


8년 전의 그 날에도, 나는 전 날 들었던 클래식 음악을 떠올리고 있었다. 평소와 똑같이. 그렇게.


여전히 수업에는 집중을 하지 못했고 창 밖에서 흩날리는 나뭇잎의 소리와 조용히 울리는 유리창의 흔들림 그리고 교실의 여러 가지 소리를 하나의 소음으로 삼았다.


그러나 갑자기, 그 소음은 주변을 잠식하며 내 기억 속에 있던 클래식 음악을 하나하나 지워나갔다. 오선지에 빼곡히 적어둔 음표가 매끄럽게 사라지듯, 한 줄이 끝나면 바로 다음 줄로 넘어가 다시 그 음표를 빠르게 지워나가며 너무나도 급하게 사라져갔다.


그 순간, 나는 그대로 소음을 내버려 두었다.


막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여전히 지금도 왜 그렇게 순순히 받아들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나의 무료했던 성실함도 함께 지워졌다.


결과론적으로 주변의 소음이 지운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렇게 내버려 둔 것 때문인지 그 이유 또한 역시 모르겠다. 여전히.


어쩌면 '나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적절한 순간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소음이 찾아왔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그 순간이 왔음을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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