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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봉수 Apr 17. 2021

한적한, 오후의 그린.

01 Greenery 15-0343

그건, 그저 그런 하루였다. 방금 내린 커피 그리고 그 커피를 담은 얼음잔의 온도가 물방울을 만들어내듯 자연스러운 여름날이었다.


아마도 한적한 오후였을까?


나뭇잎의 사이사이로 뜨거운 열기가 내려오며 차가운 아스팔트 도로를 녹였다. 무심코 그 위를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의 타이어는 몰랐을 온도가 거기에는 남아있었다. 그렇게 흩어져버린 열기는 어디로 가는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뜨거운 여름날, 한적한 오후가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게 참 웃기지 않아? 생각해보면 그냥 지구가 움직이기 때문인 거잖아. 근데 거기에 내 모든 걸 맞춘다고? 넌센스야, 넌센스."


A는 매번 이상한 질문을 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허공에 그런 의문을 던졌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불만을 가득 품은 A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이 돌아갔을지도 여전히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런 A에게 나 또한 성심성의껏 전부 대답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내가 그럴듯한 대답을 했어도 아마 A는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것이 분명하다.


가끔은 저런 이상한 질문들을 나에게 한 것이 아닐 거라고 생각할 정도다. 왜냐하면 단 한 번도 나에게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직접 물어본 적도 그리고 그 대답을 기다린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불만이 가득 담긴 A의 질문은 나름 괜찮은 답변을 가지지 못한 채, 그렇게 허공으로 사라졌다.


다시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질문이었다. 불만이 가득한 A에게는 대체 '시간'의 어떤 점이 싫었을까? 그냥 지금처럼 지구가 움직이면 안 되는 것일까? 그렇게 모두가 잘 지내고 있는데.


A와 나는 근처에 새로 생긴 미술관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평소에 미술관이나 뭐 이런 곳에 자주 찾아가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워낙 따분한 동네이기도 하고 또 여기에 없었던 무언가가 생겼다고 하니 한 번쯤은 구경을 가보고 싶어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화가의 그림을 혹은 어떤 형식의 전시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는 않았다. 일반적으로 '미술관에 간다'라는 것에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했을 그 목적이 우리에게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유명한 작가의 그림, 아니면 아예 아무것도 없다고 했어도 나는 미술관에 갔을 것 같다. A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미술관에 갔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있는데 불현듯, 좀 전에 A가 던진 그 질문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답이 떠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참 웃긴 질문이었다.'정도의 생각만 짧게 스쳐 지나갔다. 아무것도 아닌 딱, 그 정도의 순간이었다.    


"참 웃긴 질문이었어, A."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질문?"이라고 A는 모든 걸 까먹은 것 같이 대답을 했다. 정말 다 까먹은 건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됐다. 왜냐하면 귀찮게 모든 걸 다시 설명해야 할지도 몰라서였다.


그 질문은 뭐였는지, 언제 했는지, 그리고 내가 왜 웃긴 질문이라고 말을 했는지 등 모든 게 피곤해질 것 같았다.


"아, 아니야. 됐어 그럼. 그냥 잊어."라고 서둘러 대답을 했다. 그리고는 또 무슨 질문을 할까 봐,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여기에 없었던, 혹은 존재를 한 적이 없었던 그 미술관으로 나는 발걸음을 향했다. 거기에는 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뭐가 없어도 상관없을 그런 미술관으로 우리는 빠르게 걸어갔다.


A의 참 웃긴 질문처럼, 나의 발걸음도 적절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 채 그렇게 허공으로 서서히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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