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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 Nov 21. 2022

지켜낼 용기를 달라고요

달에 쓰는 두 번째 편지


어느 날 아침, 우연히 본 연애 프로그램의 클립 영상에서 한 남성 출연자가 여성 출연자에게 하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너는 여우인가.'


한 사람의 편협한 사고와 위험한 판단이 뒤섞인, 무서운 질문이었다. 상대 여성 출연자는 과연 너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강경하게 되물으며 질문으로부터 벗어났다.


지난날, 나를 지나친 인연들에게, 이제 더는 상관이 없는 무의미한 인연들에게 받았던 상처가 떠올랐다. 내로남불로 엉켜버린 관계에서 약자는 늘 나였다. 나는 관계에 익숙하면서도 때론 서툴러서,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법을 잘 몰랐다. 어느 누가 그것이 쉽다고 하겠냐마는, 어쨌든 나는 어려웠다. 상대의 못난 말과 태도를 수용하고 이해하는 편이 오히려 쉬웠으며, 몰상식하거나 도가 지나치는 행동에도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며 그럴 수 있지, 했다. 이번을 이해하고 넘어가면, 조금 기분이 상하더라도, 다음엔 그도 나의 어떤 모남을 이해해 주리라 믿었다. 모두가 꼭 맞게 살아지는 것이 아니니, 그렇게 서로의 모남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잃어가고 있음을 망각했고, 지배되고 있었다.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알아. 표현을 해야지.'

어릴 적 사랑을 시작하면서 새긴 다짐이었다. 아낌없이 사랑하겠노라고, 애정과 행복, 슬픔을 비롯한 속앓이를 진솔하게 나누어야지, 했다. 어색하기 짝이 없었지만 소중한 관계를 지키기 위한 최선이었다. 최선의 삶은 때에 따라서 소통이었다가, 불통이었다가 했다. 그리고 불통이 잦은 관계에서는 늘 그랬듯, 조금 쉬운 편을 택했다. 기분이 조금 상하더라도.

좋은 게 좋은 거지, 했다.

한발 물러나 나를 지켜낼 수 있었음에도 그랬다.


그들이 남기고 간 상처는 꽤 짙었다. 아주 느닷없이 찾아오는 기억은 깊이 묻어둔 만큼 아팠다. 의미 없이 바닥에 나뒹구는 마스크를 보고 불쑥 기억이 떠오를 만큼 순간적이었으므로. 지난 관계에 미련이 있다기보다, 나를 지켜낼 힘이 충분했음에도 지켜내지 못했다는 후회와 자책이다. 영상 속 여성 출연자처럼 강단을 지킬 수 있었음에도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나를 외롭게 만들어 버린 것. 경험이었지, 다가오는 관계에선 조금 다르면 돼, 하면서도 문득 스치는 순간마다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쌓였는지도 모른다. 무의식적으로.

그래서 그날 하루가 조금은 버거웠던 것이겠지.


지금 내 손에 쥐어진 소통의 관계가 지속되길 바란다.

그만큼 나도 더 용기 있어지기를.



달님, 나와, 손을 잡은 이들을 지켜낼 용기를 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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