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정 Oct 22. 2023

여우야여우야

하늘이 붉다

여우를 본다

날아오르는 나비가 있다

여우는 자신의 꼬리를 보려 한다

나무가 푸르다

구멍난 자신의 땅 아래를 보려한다

지렁이는 빛이 따갑다

그저 꿈틀거리는 몸뚱이 하나 지키고 싶다

하얀 나비는 점박이 나비가 부럽다

찢겨진 초록잎에 물방울 하나 있다

노을도 아닌 붉은 시간이 의문이다

저 멀리 산등성이는 질문을 알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여우는 결국 자신의 꼬리를 볼 수 있을까

토끼를 이겨버린 거북이는 웃을까

모든건 다 의미가 있다

존재하는 모든 건 다 사라진다

고로 모든 건 다 의미가 없는 것이다


꽃이 핀다

태양은 떠오르다 진다

달빛은 때를 맞춰오고 구름은 제멋대로다

더운바람 차가운 공기는 기싸움을 한다

시냇물은 졸졸 흐른다

돌멩이는 작은 물고기의 은신처다

푸른 이끼는 짙어진다

잠깐씩 놀러오는 파랑새는 절대 미끄러지지 않는다

희망은 아마도 그런 것

고요한 숲의 움직임은 두렵다

보이지도 않는 까만 개미들은 움직인다

토끼는 뛴다

거북이는 걷는다

그 뒤를 여우가 본다

나무는 큰 가지를 뻗어본다

결국 그늘은 자리를 얻는다

아무리 거센 빛도 반대편은 늘 있다


우리는 늘 아무것도 아닌 현상에 주목한다

토끼는 그냥 뛰었고

거북이는 가던 길을 걸었다

여우는 그저 자신의 꼬리가 가려웠다

인간이 부여한 의미는 가치를 남용한다

스스로 억압된 가치는 어떠한 힘도 갖지 못한다

갇혀버린 울타리안에서 존재할 뿐이다

고고한 외톨이가 되어간다

만물의 영장도 누리지 못한다

결국 사라질 인간의 시간을 알지 못한다

하늘은 높고 태양은 뜨겁다

대지는 광활하고 물은 흐른다

가치란 변하지 않는 것

인간의 시간이 사라져도 남아있는 것

생각하는 동물이라 위험하고

생각없는 미물이라 위태롭다

봄은 따스하고

여름은 무덥다

가을은 서늘하고

겨울은 춥구나

존재하는 시간은 변하지 않는다

토끼도 거북이도  소용없으니

여우야, 이제 사라지자








이전 09화 안되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