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라 Nov 17. 2019

집돌이 집순이의 고급진 술자리

모스코 뮬

 
 남편은 술을 잘 못 마신다. 술을 조금만 마셔도 얼굴뿐만이 아니라 온몸이 빨개지고 금방 잠이 들어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술을 잘 먹는 편은 아니지만 취해도 잘 티가 나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술보다도 술자리를 좋아한다. 결혼하면 남편과 같이 가볍게 술 한잔 기울이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남편이 술 마시는 것을 힘들어하는 데다 몇 모금 마신 후 진솔한 이야기라도 할라 치면 이미 잠들어버려서 본의 아니게 늘 나만의 혼술로 끝나버리곤 했다. 참 이런 것만 봐도 우리는 잘 맞는 편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우리 방식대로 술자리를 즐긴다. 내가 맥주를 마시면 남편은 콜라로 대신하며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남편은 함께 삼겹살을 먹으러 가서도 자신은 마시지 못하는 소주를 내게 따라주며 자기 잔에는 물을 채워 같이 짠 하고 잔을 부딪힌 후 물이 아닌 술을 마신 사람처럼 크아~ 하고 외쳐주는 참 고마운 센스를 발휘한다.

 이렇게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남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트에 가면 술 코너는 빼놓지 않고 꼭 간다. 술의 종류와 특성, 브랜드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고 나보다 더 잘 안다. 특히 와인과 위스키에 관심이 아주 많다.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꼭 매장에 들러 어떤 종류가 있는지, 새로 나온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 혹시 행사는 하는지 이런 것들을 꼼꼼하게 살핀다. 가끔 해외여행을 가서도 와이너리나 브루어리는 꼭 들렀던 것 같다. 이런 남편을 보면 술을 마시는 방법으로만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남편인 한동안 보드카에 빠진 적이 있다. 맥주도 힘들어하는 사람이 알코올 도수가 높은 양주에 심취해서 며칠 도안 주류 코너를 돌아보더니, 마침 세일을 시작한 스미노프를 한 병 사자고 했다. 당연히 잘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콜라와 섞어 얼음을 넣고 먹는 정도에 그쳤었는데, 우연히 칵테일 주조사 자격증을 가진 분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칵테일 하나를 소개해주셨다. 바로 모스코 뮬이라는 이름을 가진 칵테일이다.

 얼음을 채운 잔에 라임이나 레몬즙을 반 개 정도 짜서 잔에 넣는다. 보드카를 1.5oz 정도 넣고 진저에일 또는 진저비어를 120ml 정도 넣어 섞어준다. 라임(또는 레몬) 슬라이스를 넣어 장식해주면 더 좋다. 상큼한 라임 향도 좋고 진저에일에 있는 탄산이 목 넘김도 산뜻하게 해 줘서인지 여름에 시원한 게 딱 한 잔 마시면 뭔가 해변가의 고급 진 바에 간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술을 잘 못 마시는 남편도 모스코 뮬 한 잔 정도는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는지 자주 만들어 주었다. 그전에는 칵테일을 직접 만들어 마실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방법도 간단하고 보기에도 예뻐서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웠던 것 같다. 남편이 칵테일을 만드는 동안 나는 간단한 카나페 같은 안주를 만들어 함께 먹었다. 딱 한 잔만 마셔도 금세 취해서는 기분이 마구 좋아진 남편을 보면 나도 금방 취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안 그래도 집순이 집돌이인데 집에서 이렇게 잘해 먹고 노니 더 집 밖을 못 나가는 것 같다. 뭐 어때, 이런 게 사는 맛이지.
 

이전 10화 로맨틱한 생일 파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