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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크 Oct 16. 2023

이직할 결심

판을 뒤집어야겠다

나의 첫 퇴근길을 아직 기억한다. 

터널 같던 취준생활을 끝으로, 밝은 세상 밖으로 나온 직장인.


날씨가 한참 좋을 5월, 칼정장을 입은 나의 기분은 붕 뜨다 못해 이미 지구 밖으로 나가있었다. 나의 수많은 노력을 통해 이룬 결과물. 오늘을 위해 공들인 그 많은 시간들. 첫인사를 나눈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해 보며, 나는 참으로 행복했다. 셔틀버스 출발을 기다리며 창가에 머리를 살짝 기대는 나. 황홀할 만큼 반짝이는 태양아래 살랑거리는 나뭇잎.


불만이라고는 눈곱만큼 없는 그저 행복으로 충만한 하루. 오늘을 위하여 나는 그토록 열심히 좌절하고, 뛰고, 넘어졌던가. 나는 오늘은 얼마나 원했던가.



원했던 직무였고, 원했던 회사였다. 내게 이 소중한 기회가 주어졌다는 걸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바닥을 기다 못해 지하실까지 떨어졌던 자존감은 금세 찰랑찰랑 채워졌고, 누가 뭐라든 다 좋은 말로만 들렸다. 그저 매일매일이 좋았고, 지칠 수 없을 만큼 에너지가 솟았다.


공부하고, 배우고, 야근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술 마시고, 회식하고. 어려운 일도, 때로는 혼도 나는, 어쩔 땐 기분 좋지 않은 날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러 생겨났지만, 표면적인 불만만 자리했을 뿐 나는 계속해서 행복해했다.




그렇게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열심히 하는 날들이 계속 됐다. 맞선임이나 사수가 따로 없는 상황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같이 일을 해 나갔다. 

그렇게 봄은 겨울이 되고, 첫 해는 둘째 해가 되더라.


하다 보니 하고 싶지 않을 일도, 적성에 안 맞는 것도,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대기업에 들어와서 한몫을 하고 있다는 나 자신을 나는 늘 기특해했다. 나의 잘못은 없으나 막무가내로 화내는 상대방에게 그저 사과밖에 할 게 없을 때도, 늦은 새벽까지 혼자 남아 꾸역꾸역 야근을 하고 다음날 3분 차 지각으로 모든 사람들 앞에서 깨지던 날도. 속상은 해도 꿋꿋이 털고 일어나는 그런 모습을 가진 내가 좋았다. 


그냥, 직장생활이란 그런 것이었다. 힘들면서도 좋은, 화나면서도 다시 힘을 내는, 울음이 나면 추스르고 다시 다음을 생각하는.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잘 이겨내 갔고, 그 속에서 나름의 힘듦을 극복하며 성장해 나갔다.




정작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따로 있었다. 내가 속했던 팀은 정말 수많은 업무들이 있었는데, 어느덧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기 싫을 것, 할 수 없는 것이 명확해졌다. 더 깊게는 하고 싶은데 포지션상 하기 애매한 것도, 능력이 부족해 할 수 없어서 하기 싫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가장 하기 싫은 일이 가장 해야만 하는 업무이기도 했다.



나는 늘 마음속에 임원을 그리며 회사생활을 했다. 그것이 간절했다기 보다도, 언젠가는 도달한 목표지점이었다. 결국에는 깃발을 꽂을, 그곳을 향한 여정을 지나가고 있다고. 그래서 지금 내가 겪는 것들은 트레이닝뿐이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비교적 수월하게 마인드 컨트롤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하기 싫은 일은 피해 다니고 싶었다. 더 정확히는, 능력 없어 보이는 게 싫어서 잘 못하는 일은 하기가 싫었다. 본능, 재능, 역량의 잣대를 들이밀었을 때, 남들에 비해 빠르게 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을, 나는 하기 싫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게 나의 결심은 점점 고개를 들게 되었다.

여기서 잘할 수 없다면,
판을 통째로 바꿔야겠다!




나의 답은, 이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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