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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Jun 15. 2019

아빠의 자리

라떼파파들에게도 처음에는 어려웠던. 그 자리

오늘 유치원(Kindergarten)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아이와 함께 학교를 방문하여 9월 개학 전에 해야 할 간단한 준비들을 듣고... 교장과 선생님들의 인사를 듣고 궁금한 점은 문의하는 시간. 8시 45분부터 9시 30분까지 진행되는 길지 않은 행사기도 하고... 간단히 낯선 환경에 부모도 아이도 긴장하지 않도록 미리 학교를 맛보는 기회 정도로 생각했기에, 남편이 아침에 같이 가겠다고 할 때까지만 해도 '감기도 걸려 피곤한 것 같은데 집에 그냥 있으라고 할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실제 아이가 처음으로 가는 진짜 "학교"라서 (보통 3세 과정부터 NYC에서 공립학교를 통해 무상 제공하지만, 우리가 사는 곳의 주변 많은 이웃들이 Pre- kindergarten 까지는 사립에 위탁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직 3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립 교육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은 편. 보통 유치원인 Kindergarten부터 학교 부설로 프로그램이 되어 있는 편이다. ) 함께 가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했고.. 아이 아빠도 같이 가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해서 함께 했는데, 들어서는 순간,  '아빠가 같이 가지 않았으면 안 되었겠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엄마"보다 많은 "아빠"들. 



아빠 손만 잡고 온 아이들도 있었던 것은 물론... 엄마가 온 집들은 많은 경우가 부모 모두 참석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쭉 한 바퀴 돌아보니 전체 유치원 과정 입학생 중, 아시아 계열로 보이는 가정이 약 다섯 가정, 그중에서 아빠가 같이 온 집은 우리 집 포함 2집. 우리 집과 아빠가 타이와는 계 미국인인 집 이렇게 딱 두 집. 나머지 아시아 계열의 집들은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왔다. 


반대로 육안으로 보기에 아시 안 계열 가정이 아닌 경우.... 아빠가 같이 온 집은 과반수가 넘어 보였다. 인사만 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오리엔테이션의 일환으로 오픈한 교실까지 따라 올라와 돌아보는 비 아시아권의 아빠들을 보며  ‘같은 미국에서도 아빠의 참여율은 자라온 문화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새삼 이곳 아빠들의 높은 육아 참여에 대해 이런저런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모습 1.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와 학교 등원길에 가득한 아빠의 손을 잡은 아이들을 보고 놀라움 반, 부러움 반이었던 기억.


모습 2. 

주말이면 놀이터에 가득한 아빠들, 생일잔치에는 꼭 가족들과 함께인 아빠들을 보고 놀랐던 기억.




모습 3.

아내는 친구들과 여행 가고 집에서 두 아이와 주말을 보내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일상인 아이의 친구네 집을 보며, 두 아이를 능숙하게 돌보는 아빠를 보며 신기했던 기억.


1,2,3의 모습들이 익숙해질 무렵 또 마주한 모습 4.

작년 가을 유치원 입학 신청 관련 요강 설명회에 갔는데, 엄마만큼 많은 아빠들과 열성적으로 질문하는 아빠들.



어디에 가도 아이들이 있는 곳에 아빠가 있는 익숙한 풍경인 뉴욕.
가정 내에서 아빠의 자리와 역할이 확실한 미국. 




그럼, 우리 가정에서의 아빠의 자리는..?


과거 한국에서 살 때에도, 육아에 있어서는 특히 아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늘 강력히 주장하는 나 때문인지 아니면 내 덕분인지 그는 자의반 타의 반 육아 참여가 주변인들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인 남편이었다. 아이가 생긴 이후 아이와 많이 놀아주려 했고, 고래잡이망 수준의 넓은 인간관계를 뒤로하고 가급적 가족과 시간을 가지려 “노력”한다는 측면에서 남편은 주변 남성들로부터 <매우 매우 가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듯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외부에서 그런 평가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크게 칭찬하지 않는 나에게 서운함을 표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 함께 만든 아이를 위해서 아빠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고, 그 역시 아내인 내 기준에 완전하지 않은데... 칭찬이 없어 서운하다니...?'라는 의아함이 더 컸다.  


하지만 이렇게  아내에게 [가정적인 남편]이라는 칭찬을 듣고 싶어 열심히 돕는 남편이었지만, 실제 생활 속 아이를 키우는 것에 관련된 부차적인 문제로부터는 멀리 있었다. 아이를 돌보아 주실 분들을 면접하는 일정을 잡는 것도, 면접을 보는 것도, 아이 건강 및 어린이집 관련 모든 문제를 챙기는 것도. 아이 문제로 회사에 월차를 내는 것도 '엄마'인 내가 하는 것이 당연한 일련의 상황들. 남편의 출근 시간은 조정 불가의 영역이었고, 나의 출근 시간은 아이의 등원을 책임질 수 있도록 '엄마'라는 이름으로 회사에 양해를 구해야 했다.  남편이 출장 간 사이에 아내인 내가 혼자 아이를 보는 것은 당연하지만, 내가 출장을 가면 아이와 함께 본가로 가서 시어머님께 맡기는 것이 당연한 남편이었다. 또한, 횟수가 줄고 내 눈치를 보는 티는 났을지언정 술자리는 지속되었으며, 날씨가 좋은 봄가을이면 골프 약속으로 주말이 꽉 차기도 했다. 회사+육아+살림의 삼각지대에 서 있던 나의 개인적인 네트워크는 붕괴 직전이었지만, 남편의 '사회'는 견고하게 유지되던 그런 시기가 우리에게 찾아왔었다.


물론, 이는 철저히 개인 성향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남편이라는 사람의 개인의 성향이라고만 보기에는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회사 밖 '남자들의 네트워크'는 한국의 문화에서 꽤 중요시되었고, 그렇게 비워진 아빠의 빈자리는 친정 엄마 또는 도우미가 채우는 것이 남편들에게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구조였다. 그리고 육아와 회사 사이에서 멸종 직전의 우정을 이어가기 위해서 반년에 한 번씩 만나 물 마실 새도 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던 친구들의 입에서도 다들 비슷한 하소연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며 나만 이런 시기를 지나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이래야 하지...?????”이라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해결책을 그리기에는 하루하루를 허덕이다 시간이 흘러 그런 그저 전형적인 한국의 맞벌이 부부의 초상을 그리고 있던 우리였고, 나의 친구들이었고, 그 친구들의 배우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러던 중, 82년생 김지영 책이 밀리언 셀러가 되고 각종 공중파 방송을 통해서 아빠들의 육아하는 모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한국이었지만, [내가 아이를 키우고 내 아이가 어른이 되기 전]에는 실제 크게 우리 삶이 달라지기는 어려울 것 같은 아쉬움도 느끼고 있던 찰나.


어느 날 툭 떨어진 이곳에서 마주한 수많은 아빠들과 그로 인해 가정에서 좀 더 행복한 아내들과 아이들을 보며, 한국에 있었다면 수십 년 후에나 맞이할 것 같았던 변화의 모습을 우리 가정은 바로 받아들여야 했던 것 같다. 정작 나는 내 생활 범주(즉 육아 활동에)에 수없이 등장하는 다른 아이들의 아빠들이 생경했고 등 하원 길의 수많은 아빠들이 있는 신기한 광경에 놀라 남편에게 신기하다며 이야기하던 일상이었는데... 같은 모습을 보며 남편이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능동적으로 육아와 가사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둘이 놀러 나가기도 하고, 내가 부탁한 것이 아닌데도 주말학교는 아이의 등 하원을 책임지고... 아이의 학교 활동 관련 공지 메일이 오면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가급적 참여하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아이는 아빠와 함께 하는 주말을 더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고, 아빠를 향한 애정을 무한히 표현하는 중이다. 


이 모든 변화는 자. 발. 적. 으.로 일어났다.

당연히 이런 남편의 변화는 아이의 엄마로서 아내로서 매우 즐거울 수밖에. 물론, 이런 남편의 변화에 대해서 이곳의 여성이자 엄마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 "그럼 전에는 이렇지 않았었어??한국에서는 어땠는데??"라는 답이 돌아왔지만 (많이 애를 쓴다 해도, 절대적으로 이곳의 아빠들보다는 육아 참여가 적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이런 반문을 해 온 것 같다 ㅎㅎㅎ), 적어도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보다 더 살인적이라고 말할 만큼 더 힘든 상황에서 이루어진 변화이기 때문에 그를 더 가치있게 '칭찬' 해 주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다.  


변화의 시작은, 어쩌면 ...이곳의 사회적인 압박이 아니었을까? 

그는 '주말은 가족과', '놀이터는 아빠와', '아빠와 함께 하는 등교' 같은 풍경에 계속 노출되었고... 육아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이곳의 수많은 #육아빠들과 교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이는 학교에 다른 아빠들은 자주 오가는데, 왜 우리 아빠는 아침에 데려다줄 수 없는지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의문은 남편으로 하여금 한국보다 더 바쁜 일 속에서도 잠자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아이와 함께 등교하는 순간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와의 강력해진 애착과 그로 인한 기쁨은 자연스럽게.... 아는 만큼 보이는 육아의 희열을 선사했다.  아이가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눈물 나게 힘들지만 지금의 찰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아이와 시간을 보낸 부모라면 알 수 있는 바로 '그것' 말이다.


이렇게, 토종 2010년대 버전 한국 아빠- 즉, 본인들 어머니보다 훨씬 의견이 강해진 아내의 눈치를 보며 육아 참여를 하긴 하나, 그 필요가 어디까지 인지 알지 못하며, 아빠 육아의 바람직한 롤모델은 TV 속에만 있는 -  였던  남편이 변화한 것은 "미국"이라는 환경이었다. 


미국은 한국에 비해서 근무지나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직장들도 많거니와 특히 '가정이나 아이'에 관계된 문제라고 이야기하면 양해를 구하는 것이 사회적 평판이나 업무 능력 평가에 크게 문제를 미치지 않는 편이다. 즉, 개인적인 일정은 알아서 조정하더라도 일만 제대로 하면 문제없는 것이 일반적. 여의치 않은 상황으로 아이를 데리고 회사에 출근하거나, 화상 미팅에 아이를 데리고 참여하는 경우들도 자주 볼 수 있기도.


그렇다면... 
한국도 사회적 환경만 변화시킨다면, 
가정에서의 아빠의 모습이 변화할 수 있을까?

내 답은..[, 조금 더 빨리 변화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에 가까운 것 같다. 


물론, 환경과 여건이 된다고 해서 처음부터 모두가 그 시간과 노력을 가정에 쏟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근무시간을 단축시켜줘도 생각보다 많은 남성들이 '집으로 가기 싫다'라고 이야기하는 상황이 많이 생겼다는 것은 몇 가지 다른 나라의 예로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우선, 이곳 미국에서 만난 수많은 50-60대의 할머니들이 30년 전에는 아이와 집안일에 신경 안 쓰는 남편들과 함께 아이를 키웠다 이야기하고 있고, 그 아버지들이 변하는 데 한 세대가 걸렸다고 말한다. 업무시간 단축으로 변화 중인 현재의 일본에는 집으로 귀가하고 싶지 않아 방황하는 남성들이 늘어났다는 기사도 같은 맥락. (아래 링크 참조)


[퇴근 일찍 하면 가정에 충실할까… 방황하는 日 남성들 - 세계일보]              

http://www.segye.com/newsView/20190509503449?OutUrl=naver

기사 내용 중...

올해 초 SMBC컨슈머 파이낸스의 ‘30대, 40대의 금전 감각에 대한 의식조사 2019’에서 “일이 끝나도 곧장 귀가하지 않고 이리저리 방황을 하면서 돌아다닌 적이 있다”고 응답한 남성은 54.1%, 여성은 43.7%로 집계됐다.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한 여성은 “남편이 예전보다 야근 시간은 줄었고, 퇴근할 때 ‘지금부터 귀가한다’고 연락하는 것은 좋지만 그때부터 시간이 많이 걸린다. 회사에서 집은 50분 거리인데 1시간 반 이상 걸리는 일도 있다. 귀가 시간을 고려해 온 가족이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기다리는데 아이가 배고프다고 보채는 것도 고통스럽다. 나도 일하느라 피곤하니까 짜증이 난다.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고 경험담을 소개했다.


또한 2017년 SBS 스페셜에서 스웨덴의 라테 파파를 다룬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방송을 보며 육아 관련 복지의 정도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지금의 모습을 있게 한 법률들이 처음 시작되었던 시기.. 그러니까 약 30년 전의 스웨덴에 대한 이야기였다. 

30~40년 전의 스웨덴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많은 아빠들이 직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엄마들의 취업률은 낮았던 편. 그러다가 육아 관련 휴직 지원 및, 업무시간 조정 등을 통해서... 아빠들이 빨리 가정으로 돌아가고 육아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정부가 나서서 열심히 조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아빠들이 '집으로 일찍 돌아가는 것을 반기지 않는 반응' 이었고, 집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불편해하는 아빠들이 더 많았다는 것.  이미 밖에서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고, 회사라는 울타리에 넣은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당연해진 사람들에게 "가정"은 어찌 보면 [낯설고 힘든 곳]이 되어버렸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지금 스웨덴 라테 파파는 [아빠들이 가정에서 본인의 자리를 찾는 것]부터가 넘어서야 할 첫 과제였던 듯하다. 늘 그렇듯, 언제나 익숙한 지금의 무언가를 바꾸는 데는 많은 반대에 직면하고 노력이 필요한 듯하다. 


얼마 전 한국에서 초등학교 입학을 시킨 친구가, 요즘은 학교에도 아빠들이 많이 보인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많이 보인다'라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굉장히 궁금해졌다. 

모든 것이 빨리빨리 변하는 서울이고, 한국이니... 어쩌면 내가 떠나온 1년 사이에 또 엄청나게 달라져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양복을 입고 유모차를 밀고 아이를 등원시키는 아빠가 많이 보이고.

학교 활동에 엄마 못지 않게 아빠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고.

오늘 같이 학교의 오리엔테이션이나 입학식 등에 아빠가 같이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상인 모습. 그리고, 주말이면 엄마가 없어도 아빠와 함께 손을 잡고 놀이터에 나오는 아이들이 더 눈에 많이 뜨이는 그런 모습.


멀지 않은 미래의 한국의 그 모든 모습이 이 곳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다른 모든 것에 엄청 빠른 한국이니까.

이 부분도 엄청 빨리 변해서, 가정 내에서의 행복에 눈을 뜰 수 있는 아빠들이 많아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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