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로부터 보호하겠다는 투철한 뉴욕 경찰의 의지. 칭찬해.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저녁을 준비하던 아주 지극히 평온한 저녁.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으려는데 남편이 정말 드물게 집에 일찍 왔다. 마침 우리도 저녁식사가 늦어졌고, 남편도 허겁지겁 달려온 듯 아무것도 못 먹은 상태였기에... 평일에 드물게 가족들이 둘러앉아 저녁을 맛있게 먹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나는 부엌을 정리하고 있던 중이었고 남편은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는데, 너무 고요한 정적.
아이가 조용하면. 무슨 일이 있는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나는 부엌에서 남은 것들을 치우는 동안 남편이 빼꼼히 화장실을 들여다보았다.
"뭐해~?
"(깜짝!!) 어..... 엇..... 아니야 아빠"
"엇, 왜 이렇게 깜짝 놀래? 너 뭐 아빠가 하지 말라는 거 하고 있었지?!"
늘 있던 뭐 그런 평범하게 말 정말 안 듣는 다섯 살을 키우는 집의 대화랄까.
가만 보니, 그동안 집에서 수 없이 가지고 놀던 작은 사이즈의 고무풍선을 또 입에 넣다가 걸린 듯했다. 그 고무 냄새나는 풍선이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작은 풍선 안에 물을 채워서 동글동글하게 만든 뒤 매듭을 여러 개 만들기를 즐겨했는데, 가끔 매듭 만들기가 어려우면 양손에 입까지 동원해서 낑낑거리는 아이였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나온 아이가 고무풍선을 들고 나와서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주저리주저리 아빠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빠, 있잖아! 이런 풍선은 이렇게 풍선 안에 빵빵하게 물이 들어 있을 때, 이로 콱 물면 입안에서 터지기도 하고 풍선을 먹게 되기도 하는데, 똥으로 나올 거야~!"
"그건 그런데... 으응....?????..........................
너, 풍선 삼켰어?"
"........................ 엉............."
"엉.....................?????????????????????????????"
이미 눈이 튀어나올 듯이 놀라서 아이에게 달려오는 우리를 보고, 아이는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울음이 터져버렸다.
'아아.... 플라스틱 고무풍선을 삼켜 버렸다니... 이를 어쩌지. 얼마만 한 것이 들어갔는 지도 알 수가 없고, 거기다 위나 장에 혹시 달라붙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배도 작은데 위장관은 더 작을 듯한데... 혹시 고무풍선이 거길 막아버리는 건 아닐까????'등등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머릿속을 막 둥둥둥 둥 떠다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는 울음만 터졌을 뿐, 스스로 자백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로 멀쩡했다. 그래도, 한국이었다면 이런저런 것을 알아볼 필요도 없이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토대로 바로 싣고 소아 응급실로 달렸을 것 같지만, 이 곳의 응급실 시스템이 어떤지도 모르겠고, 일단 아이가 호흡하고 말하고 노는 것은 전혀 이상이 없는 상황이라, 미국에서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 서치 하기 시작했는데, google에서 "kids waterballoon swallow"를 서치 해봐도 딱히 이렇다 할 적절한 내용이 없었다. 삼키고 나서 목에 걸려서 호흡이 불가하거나 숨소리가 불규칙 해지거나, 토하거나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의 내용만 나올 뿐... 이리저리 찾아도 풍선이 위험하니 아이가 삼키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류의 글들만 있고, 우리처럼 풍선을 삼키고도 너무나 멀쩡해 보이는 아이의 케이스는 찾을 수가 없었다.
내가 혼신을 다해 핸드폰을 붙들고 적절한 대처방법을 찾는 동안, 한쪽에서 당황함이 지나쳐 아이에게 왜 그랬냐며 본인 혈압이 더 오르도록 불같이 화를 내고 있는 남편을 보고 '아이를 달래기는커녕 저러면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를 말릴 시간에 얼른 어찌해야 할지 찾는 것이 더 급했기에 다시 핸드폰으로 눈을 내렸다. 그렇게 미친 듯이 찾아보았으나 마땅한 대처방안을 찾지 못한 내가 택한 것은, 911.
"저희 아이가 풍선을 삼켰는데요... 보기에는 멀쩡...."
"(말 끊고) 아주머니. 집 주소를 먼저 알려주세요"
"아니 저희는 앰뷸런스가 필요한 게 아니라 제가 보기에 아이가 위급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아서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려고요"
"아주머니. 집 주소 불러주세요."
"네.. 저희 집 주소는!@#$%%^^^&&&** 에요.
"아이가 어떻다고요?"
"아이가 풍선을 삼킨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사이즈를 삼켰는지는 알 수가 없는 상황이고요. 아이는 호흡, 맥박, 반응 모두 정상이고 지극히 보기에는 정상이에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앰뷸런스가 가고 있습니다. 아이는 말할 수 있나요?"
"네? 앰뷸런스요? 아, 저희는 앰뷸런스까지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 대화를 듣고 있던 남편이 뭐라 뭐라 나에게 수신호로 이야기를 하는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겠고... 이미 전화기 너머의 911 아저씨는 내 신상정보와 아이 이름 등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제가 보기에 저희 아이는 앰뷸런스 탈 만큼 위급한 것 같지는 않아서,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알려주시면 저희가 데리고 갈게요. 앰뷸런스 비용은 얼마나 하나요? 저희는 다른 나라에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이게 어떻게 되는 상황인지 잘 모르겠는데... ㅠㅠ 저희가 직접 데려갈 수도 있는데 꼭 보내실 필요 없을 것 같아요? " 추가로 부연 설명을 해보자면. 미국으로 이사 오기 전, 교통사고가 나서 앰뷸런스를 불러서 타고 병원에 갔는데 수백~수천만 원이 청구되었다는 글을 본 기억이 뇌리를 스쳤기에... 아이를 우리가 데리고 십 불도 안 되는 택시를 타고 가면 될 것을 괜한 전화를 했구나..라는 생각에 물어본 질문이었다.
나의 질문과는 상관없이 전화기 너머의 경찰관이 계속 나에게 이야기했다.
"아주머니, 비용은 저희가 알려드릴 수 없고,
Your kid is your first priority! (당신의 아이가 최우선 순위입니다)"
"아, 아는데요.. 앰뷸런스 탈 정도는 아닌 것 같다는 말이에요"
"아주머니. 아이의 상태가 변한 것이라면 전화 다시 주세요. 앰뷸런스는 가는 중입니다."
"네? 저... 아.. 저는 가이드를 받고 싶었을 뿐인데요."
그런데,
이 대화가 어마어마한 결과를 초래할 줄이야...
이때만 해도 상상도 못 했다.
뭐, 이러나저러나 병원은 가서 체크해 봐야 하니 비용이야 어찌 되었건 그냥 가자고 남편이랑 이야기하며, 눈물 콧물 빼고 있는 아이를 안고 앞치마도 푸르지 못하고 얼이 빠진 채 식탁에 앉아 있었다.
전화를 끊고 채 5분도 안 지난 것 같은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눈만 동그랗게 뜨고 앉아 있는 우리에게 저벅저벅 걸어 들어온 경찰은 "Is she OK?"라는 질문을 던지며 아이를 보았고, 갑자기 제복 입은 경찰 아저씨들이 우르르 들어와서 자기를 찾자 놀란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앰뷸런스에 경찰이 같이 올 리는 없고...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는데, 도착한 경찰은 우리에게 상황을 먼저 체크하고, 청진기로 아이를 간단히 진료한 뒤 호흡과 아이 반응에 아무 문제가 없음을 먼저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본인들은 이 지역을 순찰하던 경찰들이고, 출동 지시가 내려와 들린 것이라는 설명 했다. 우리의 신상정보 파악과 동시에, 앰뷸런스가 곧 올 테니 같이 내려가 기다리겠냐는 질문을 해왔다.
이 시점이 되어서야 나는 왜 경찰이 먼저 온 것인지 슬슬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매우 객관적으로, 내가 나눈 대화가 911에 리포트가 된 상황만 정리해보자면
1. 다섯 살 아이가 무언가를 흡입했다고 함.
2. 그러나, 엄마의 반응이 지나치게 침착하고, 아이는 정상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설명을 거듭하고 있음.
3. 앰뷸런스를 보내주겠다고 하는데, 앰뷸런스 비용을 물어보고
4. 필요 없다며 앰뷸런스는 캔슬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있음.
: 가만히 상황을 되돌이켜 짚어보니, 사고 상황"으로 포장할 수 있는 아동 학대의 정황일 수 있기 때문에... 경찰이 같이 출동했던 것.
다행히.. 경찰은 아이가 실제 911에 리포트 된 대로 너무나 멀쩡히 일상적인 반응을 하고 있는 상황인 것을 확인하고 아동학대의 정황은 없는 것을 확인한 눈치였다. 그리고 우리는 경찰과 함께 로비에 아이를 안고 내려가서 오는 앰뷸런스를 기다려서 간단한 청진을 받고 병원으로 향했다. 물론 예상한 대로. 아이는 호흡도 정상, 체온도 맥박도 정상, 목 안의 이물감도 없이 너무나 깔끔하게 손톱만 한 풍선을 먹어버린(?) 지라, 엑스레이조차 찍을 필요 없이 잘 먹여서 배변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가이드를 받고 귀가했다. 풍선은 심지어 엑스레이를 찍는다고 해도 나오지도 않는단다. 더불어, 다음날 체크해보니 우리가 가진 보험에서는 앰뷸런스를 100% 커버해 주기 때문에 우리의 비용관련 걱정은 매우 매우 쓸데없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런 전혀 예상밖의 시트콤 같은 상황을 마주하며 내가 배운 몇가지는...
하나. 911의 신속성과... NY경찰들의 민첩성.
911에 전화를 걸면, 특히 '아이' 관련 이슈라면 전화와 동시에 경찰 및 앰뷸런스가 출동하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라는 것을 몰랐었다.
나는 어쩌면 마치 녹음된 메세지처럼 "Your kid is your first priority!"를 읊어대던 911 전화기 너머의 아저씨가 아니였다면, 자의적으로 의학지식도 없는 내 눈으로 판단한 상황을 토대로 밤새 아이를 지켜본 뒤 다음날 아침에 원래 다니던 소아과가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병원에 데려갔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다행히 우리 아이는 내가 예상한대로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사로부터 확인받을 수 있었지만..만에 하나, 겉으로는 멀쩡해보였지만 밤새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내가 아이를 제일 잘 안다"라는 자만으로 [의학전문가]의 확인이 아닌 내 판단을 믿고 병원으로 한두시간이라도 늦게 데려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나에게 재빨리 앰뷸런스를 보낸 911 아저씨가 너무나 고마워졌다.
또한, 전화를 끊은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집으로 쳐들어온(?) 키가 거의 2미터는 되는 거구의 경찰들. 순간 내가 나쁜 놈이었어도 저런 경찰들 사이에서는 뼈도 못 추리겠다 싶기도 했던 찰나의 감상도 생길 정도. 이 경찰들 덕분에, 나는 아이와 우리에게 무슨 사고가 생겨도 "911" 버튼 하나면 이들은 우리를 구하러 달려와 줄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둘. 응급 의료 시스템 보험 커버리지
미국은 보험사에 따라, 커버하는 부분이 개인별 보험 플랜에 따라 다르니 반드시 사전에 응급상황에 필요한 앰뷸런스나 ER 진료비용이 어찌 되는지 사전에 체크해 둘 필요가 있다는 것. 실제 아이 때문에 응급실에 갈 상황이 한 번은 있지 않을까 싶어 인근의 ER들은 체크해 두었었지만, 앰뷸런스까지 체크해 두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아이는 심히 '무탈한 상태'로 구급차도 타보고 응급실 나들이까지 했으니... 이번에 이 체계는 물론, 우리 보험이 앰뷸런스는 100프로 커버 한다는 것 까지 확인하게 되었다. 해프닝 중의 정보획득 이랄까...
셋. 아이 나이 5세는 말을 '듣는' 나이가 아니라, '들으면 다행'인 나이.
미친 듯이 훑어 내려가던 풍선을 삼키는 사고에 대한 여러 글 중, 생각보다 이와 같이 입 안에 무엇을 넣거나 삼키거나 해서 병원에 실려오는 아이들의 연령이 1-3세 보다는 3-6세가 훨씬 많다는 기록이 있었다. 만 다섯 살을 넘긴 한국 나이 6세를 보면서, 그래도 이제는 말을 들을만한 연령이니 이런 사고로부터는 멀어지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아이가 의도치 않게 흡입하게 되는 경우를 포함 폭발하는 모험심을 이런 곳에 발현시키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양육자들이여.
긴장을 늦추지 말라!! 이제 기저귀는 뗀지 오래고 말도 꽤 통하는 것 같고 다 컸다 싶은가? 아니다.
아이들은 사람 되려면 아직 아주아주 많이 더 키워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자.
경찰차가 한 대도 아니고 세 대에 앰뷸런스까지 함께 한 밤 8시부터 시작한 예상치 못한 대 소동은 밤 10시가 되어서 종료된 하루였다. 전날 응급실에서 보낸 여파로, 썸머 캠프는 일찌감치 조퇴하고 집에서 군것질 하며 글쓰는 내 옆에서 잔망 떠는 이 똥강아지를 보며 아이의 생사를 오가는 그런 응급상황으로 앰뷸런스를 불렀던 것이 아니라는데 감사한다.
그러니. 이렇게 예상치 못한 경찰관들과 앰뷸런스와의 만남은 이번 생에는 더 없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