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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는 캘리포니아에서 일합니다

프롤로그: 미군부대 간호사가 되었다

by 희원다움

분명 나는 한국에서 출근을 한다. 그런데 서류를 들여다보면 주소는 캘리포니아로 찍혀 있다. 미군부대 병원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미국 우편 체계에 따라 캘리포니아 관할로 묶어 관리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매일 “한국에 있는 캘리포니아”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간호사가 되고 처음 발을 들인 곳은 한국의 한 병원이었다. 나름 설렘도 있었고, 이 길에서 묵묵히 경력을 쌓아가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태움’이라는 단어가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 몸으로 겪게 되었다. 선배들의 차가운 시선과 날 선 말들은, 새내기 간호사였던 나를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결국 더는 버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병원을 관뒀다.


사실 나는 직장을 다니다 서른이 넘어 간호학과에 편입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마음속에 하나의 선택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나를 받아주는 자리가 없으면, 미국에 가면 되지 뭐.” 그 옵션이 있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간호학을 선택할 수 있었고, 또 지금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래서 병원을 그만두던 순간에도 마음속 결심은 분명했다. “미국 간호사가 되어야겠다.” 제일 먼저 한 일은, 규모가 작고 오버타임이 적은 병원을 찾는 것이었다. 미국 간호사가 되려면 면허증 취득을 위해 공부가 필요했고, 그러려면 병원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이 필수였다. 아무것도 확실히 정해진 건 없었다. 하지만 승무원이 되었을 때도 그랬듯, 내가 선택한 환경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길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그때, 나의 멘토였던 간호학과 교수님이 뜻밖의 조언을 주셨다. “우리나라에도 미군부대 병원이 있어요. 한 번 알아보는 게 어때요?” 미국이라는 목표를 향해 한 발 내딛으려던 내게, 한국 안에서 그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린 순간이었다.


그 길을 따라 들어온 지금, 나는 미군부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환자로 오기도 하고, 가족들과 함께 병원을 찾기도 한다. 한국 문화를 배우려는 미국 사람들, 그리고 미국의 개방적인 시스템 속에서 그들의 방식을 익히며 적응해 가는 한국인 직원들. 그렇게 서로의 차이를 조금씩 이해하고 맞춰 가는 과정에서, 나는 오늘도 소소한 웃음과 작은 놀라움, 그리고 감사로 하루를 채워 간다.


이 브런치북은 그 특별한 풍경 속에서 피어난 나의 생각과 기록을 담았다. 좌절로 시작된 길이 결국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왔다. 독자들도 이 글을 통해 조금은 다른 일상을 엿보고, 자기 자리에서 다시 한번 힘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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