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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완벽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퍼펙트 데이즈

by 허씨씨s Mar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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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 완벽한 날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3)는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일상을 그저 담담히 보여준다. 단조롭게 반복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에 흔들리기도 하는 그의 일상을 보며 묘한 여운과 기분 좋은 나른함을 느낄 수 있다.  



히라야마(야쿠쇼 코지)히라야마(야쿠쇼 코지)


- 다카시 : 히라야마 씨. 뭘 그렇게까지 하세요.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 텐데. 

- 히라야마 : ...


도쿄 화장실 청소부로 일하는 히라야마. 도시에서 가장 더러운 것을 마주하는 일 그리고 남들이 업신 여기는 일이지만, 히라야마는 자신의 업 지극히 정성을 다한다. 건성건성 게으름을 피우는 그의 동료 다카시(에모토 토키오)가 보기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일을 유달리 열심히 하는 것 외에도, 히라야마는 하루하루 자신의 루틴을 고집스럽게 유지한다.


이웃의 새벽 빗자루질 소리에 잠을 깨고. 

정성껏 키우는 화분들에게 물을 주고.

집 앞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마시고. 

출근길 차에서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고.

필름 카메라로 나무 사이에 비치는 햇살을 찍고. 

퇴근 후에 자전거를 타고 목욕탕을 다녀오고.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잔을 기울이고.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등.


거창할 것이 전혀 없는 일과지만 이따금씩 클로즈업되는 표정에서 히라야마는 늘 미소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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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견고할 것만 같은 히라야마의 일상은 주변 인물들에 의해 종종 깨어진다. 다카시의 여자 친구 아야(아오이 야마다)가 등장하며 자신의 차를 빌려주고 아끼는 올드팝 테이프를 팔게 된다. 이후에 조카 니코(아리사 나카노)가 갑자기 등장하면서 자신의 휴식터인 집의 2층을 내어주게 되고 오랜만에 동생 케이코(아소 유미)를 재회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필연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히라야마는 주변 인물들의 영향을 최소화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조카인 니코 그리고 영화 막판에 등장하는 단골 선술집 주인의 전남편 토모야마(미우라 토모카즈)와의 대화를 제외하면 그 누구와도 거의 대화를 주고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저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는 듯 반복되는 자신의 일상을 완고하게 수호하려고 한다. 배경에 대하여 영화는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히라야마와 케이코가 잠깐 대면하는 장면을 통해 과거에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었음살며시 암시할 뿐이다.  


히라야마는 변치 않는 일상을 고집하면서도 그림자가 겹쳐도 별 변화가 없는 것 같다는 토모야마의 말에 발끈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리가 없다며 그림자를 거듭 겹쳐본다. 겉으로 드러나는 일상은 변하지 않겠지만, 그 이면에 담긴 그림자 혹은 내면의 풍경은 변하기를 히라야마는 내심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영화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평화롭다. 그러나 왠지 모를 은은한 슬픔이 곳곳에 만연해 있다.


그에 비추어 영화의 제목 퍼펙트 데이즈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삶의 완벽성은 슬픔을 없애는 것이 아닌 슬픔에도 불구하고 그저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에서 비롯됨을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슬픔이야말로 삶의 원동력임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영화의 엔딩장면에서 보여주는 히라야마의 압도적인 표정 연기가 그러한 삶의 역설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히라야마의 퍼펙트 데이즈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 안에는 슬픔보다 사랑이 좀 더 가득하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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