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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모 Jul 14. 2019

오늘도 또 미안하다

아, 또 아이에게 화를 내었습니다. 아빠되기 전에는 감정조절 잘 하는 이성적인 사람이라 자부했었는데. 예전처럼 하루 종일 함께 있는 것도 아닌, 어느 정도 커서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에도 다니는 훨 괜찮은 상황인데도 그렇습니다. 아이의 하교 후 아내가 퇴근하기까지의 몇 시간동안 화 내지 않고 웃으며 사랑으로 대하겠다는 아빠의 다짐은 오늘도 산산이 깨어집니다.     


부모는 아이에게서 자신을 봅니다. 장점도 단점도 말입니다. 문제는 아이들에게서 자신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할 때입니다. 입대지 않고 넘기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자꾸만 훈계 하고 간섭 하게 됩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면 자꾸만 화가 치솟습니다. 바뀌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 때문에 또는 미안함을 숨기려고.     


사실 첫째가 저를 많이 닮았습니다. 이목구비부터 두상까지. 성격도 비슷합니다. 논리적이지만 즉흥적이고, 사람을 좋아하지만 자기중심적입니다. 어릴 적부터 언어가 발달해 똑똑하다는 소릴 자주 듣지만 사실은 언어가 발달한 것 일뿐이며, 덩치는 크지만 몸짓은 둔합니다. 또 한번 어디에 꽂히면 브레이크가 잘 안 걸립니다. 한번 놀아주기 시작하면 누구 하나 울음 터질때까지 멈추지 않기에 놀아주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몇시간이고 앉아서 들여다봐야 직성이 풀리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일주일 내내 같은 음식만 해달라고 합니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핑크색으로 도배하려기에 제발 그러지 말라고 뭐라했더니 다른 색을 고르는 척 하다가 엄마 손을 빌어 핑크를 집어들더군요.     


첫째는 무엇인가가 눈에 거슬리면 꼭 입을 댑니다. 하다못해 어떤 행동에 대해 제가 혼 내었던 걸 기억해뒀다가, 제가 똑같은 행동을 하면 ‘나한테 하지 말라고 하면서 아빠는 왜 해요?’라며 따지듯 묻습니다. 맥락은 고려않고 행동 자체만으로 판단 할 순 없는 거라며 아이가 최대한 알아들을 수 있게 풀어 설명해보지만,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에게 전후사정과 단어의 함축적 의미까지 다 이해시키는 건 너무 힘든 일입니다. 첫째는 못 알아들어도 설명해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설명을 들었다는 자체에 의미를 꽤나 크게 부여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설명하다 저도 모르게 훈계가 나오고 결국 말다툼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요즘 부쩍 배가 나와 스트레스인데 자기도 만만치 않으면서 제 배를 보며 놀려대는 딸아이. 자기도 제대로 못하면서 자꾸만 저한테 와서 간섭하는 딸아이. 베개 싸움 하자며 놀아 달 랄 땐 언제고 아빠가 배게를 세게 휘둘렀다며 서럽게 울어대는 딸아이. 가끔은 진심으로 미울 때가 있습니다. 아빠도 부족한 사람인데 왜 이렇게 다 받아줄 것 마냥 자신을 내어던지는지. 아빠를 자신이 원하는 걸 다 들어줄 연인이자 친구같은 존재로 대합니다. 부모이면서도 저는 그런 아이의 태도가 참 부담스럽습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돌이켜 보면 저도 그랬습니다. 저 역시 어머니를 그리 대했고, 어머니도 그런 제 태도가 힘드셨던 것인지 저랑 말 섞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결혼 후 출가하고 나서야 관계가 돈독해진 것이 그 방증입니다. 그런 제 모습이 자꾸 첫째에게서 보이나봅니다. 나를 힘들게 했던 나의 단점들이 너에게선 사라졌으면. 내가 겪었던 그 고생들을 너는 하지 않았으면. 그런 마음에서 한번, 두 번 입을 대기 시작했던 것인데 자꾸만 울리고 자꾸만 혼내키게 되고, 그것이 습관처럼 반복되어 저도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아이에게 가혹한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매번 미안합니다. 혼내서 미안하고, 미안해서 또 미안합니다. 너무 미안하니 미안하다 말 하기도 힘들어서 미안합니다. 둘째에게 뺏겨버린 사랑을 되찾으려 자기 나름 이쁜짓도 해보고 둘째를 따라도 해본다는 걸 너무 잘 아는데, 그런 어리광을 사랑으로 품지 못하고 자꾸만 왜 이러냐며 누나답게 행동하라 이야기 한 제 모습이 또 미안합니다. 이제 갓 8살이 된 첫째에게 2~30대에게나 적합할 어려운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가르치려 드는 제가 참 미안합니다. 기대치가 높은 것인지 제 인내심이 낮은 것인지. 품고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일 텐데 왜 그러지 못하는지.     


그러고 싶지 않은데 참 잘 안되는, 나의 부족함 때문에 아이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그런 때가 있습니다. 그로인한 미안함이 쌓이고 쌓여 미안하단 말조차 미안해지는 순간이 찾아오면, 어찌해야 될지 도무지 알 수 없어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나를 향한 아이의 사랑이 변함없을 것이란 믿음이 그 순간을 이겨낼 첫 번째 열쇠입니다. 나의 부족함에도 여전히 나를 사랑해 줄 것이란 믿음. 부모이기 때문에 완전할 수 없고, 아이 또한 그러하기에 서로의 부족함을 서로가 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믿고 사랑할 수 있을 거란 믿음. 오늘도 잠든 첫째를 보며 다짐합니다. 내일은 더 잘해줘야지. 내일은 판단하지말고 품어줘야지. 말하기보단 들어줘야지. 등굣길을 나서는 아이에게 사랑한다 이야기하고 꼭 안아줘야지. 이런 제 마음이 변치 않고 영원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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