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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MDJAI Nov 17. 2019

다원화와 난민 수용

미국의 다양성과 동등성 트레이닝 프로그램이 한국에 적용될 수 있을까?

     어느 순간 난민 수용 이슈가 한국에서도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한국어를 쓰는 한국 국적을 가진 한민족이 사는 나라인 한국에 외국에서 온 여행자들은 항상 있었지만, 난민을 수용하는 것에 대한 대대적인 논의가 필요한 때가 오고 있다. 이런 이슈가 등장하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미국과 한국이라는 나라를 구성하는 인종이나 국적의 차이이다. 

     미국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다양성의 나라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다른 인종과 국적으로 나누면 셀 수 없이 많은 조합이 나올 것이다. 미국은 다원화되어 있고, 각 인종이나 국적을 대표하는 사람들끼리 자신만의 문화 공동체를 형성하고, 또 다른 문화 공동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미국 사람들이 항상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문화 공동체 내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다른 문화 공동체에도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다. 동일 문화 공동체 내의 사람들끼리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울 것이다. 그 문화 공동체가 지정한 문화적인 약속을 공동체 구성원끼리 잘 지키고 따른다면 이 공동체를 윤리적으로 법적으로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서로 다른 문화 공동체의 화합이다. 

     나의 대학교 1학년 룸메이트들을 예로 들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나를 포함한 3명의 학생들이 한 기숙사 방을 사용했다. 한 명은 러시아계 미국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브라질계 미국인이었다. 러시아계 미국인 룸메이트는 실내에서도 운동을 즐겼고, 더위에 약했다. 운동을 한 후에 잠이 들기 전에 창문을 열어 놓고 잠이 드는데, 브라질계 미국인 룸메이트는 추위에 약해서 항상 불만을 표했다. 한쪽은 창문을 열어 놓고 잠드는 규칙이 있고, 다른 한쪽은 창문을 닫아 놓고 잠드는 규칙이 있다면, 두 개의 규칙은 양립할 수 없다. 이런 양립할 수 없는 규칙이 계속된다면, 두 가지 결과가 가능했다. 한 결과는 한 사람이 방을 떠나거나, 또 다른 결과는 둘 중의 한 사람이 계속 참아야 했다. 룸메이트들 중 누구도 방을 떠나지 않았고, 브라질계 미국인 룸메이트가 담요를 더 많이 덮고 자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물론, 나처럼 어떤 규칙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대학원 1학년 때는 중국 국적의 생물 전공 대학원생과 같은 기숙사 공간에서 지냈다. 둘 다 국제 학생이었고, 먹는 음식도 한국, 태국이나 중국 음식 등으로 비슷했고, 한국 노래에 관심이 많은 중국인 룸메이트와 연구나 수업 외에도 이야기할 부분들이 많았다. 한국말 대신 영어로 대화해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고 한국인 룸메이트와 지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국과 중국에서 모두 공휴일인 설날을 함께 기념하거나, 한국에서 어떤 이슈가 터지면 중국인 룸메이트가 먼저 알려 주기도 했다. 이처럼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면, 서로의 문화를 배우려고 노력하기 전에 공감대가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난민 수용 이슈가 발생하면, 각 나라의 자국민들은 갑자기 찾아온 다른 문화의 이방인들이 본인의 안전과 권리가 침해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 수용된 난민들의 보호를 위해 자국민의 권리를 일부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도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에 난민 수용이 자국민의 권리를 심하게 침해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난민 수용은 큰 거부감을 일으키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이미 다원화된 나라인 미국에서, 주기적으로 다양성과 동등성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훈련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인종과 국적, 그리고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미국에서 다른 문화 공동체의 사람들을 배려하는 훈련은 언제나 진행 중이고 개선 중이다. 법적으로도 인종 갈등을 유발하거나 인종차별적 발언 및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엄중하게 처벌받기도 한다. 법과 제도가 인종, 국적,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반면에, 한국은 그러한 다양성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 애당초에 한국에서 인종이나 국적의 다양성에 대해 고려할 일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민 수용의 법과 제동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이전에, 난민 수용과 함께 급속도로 다원화될지도 모를 한국 사회에 대해 국민 전체가 차근차근히 생각할 시간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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