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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Feb 16. 2024

타고난 기질, 그보다 더 중요한 것

에필로그

지금까지 16개의 주제를 가지고 기질(temperament)의 세계를 안내했습니다. 마지막 종착지에서 나눌 이야기는 기질을 바라보는 '관점'관한 내용입니다.

 



나는 내가 왜 마음에 안 들까?



대학교 수업 때 저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쭉 적어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흰 종이 앞에서 저는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몇 줄 써 내려간 종이에는 저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첫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고 첫 안내서를 쓸 때, 비슷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아이의 걱정되는 점은 꽉 채워 적었는데, 막상 아이의 장점 부분은 몇 줄 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나를 바라보는 관점이 아이에게도 반영되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무겁고 불편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 또는 자녀의 고유한 기질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나는 내 기질(성격)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장 큰 보석을 갖고 계신 거예요.


하지만 저처럼 머뭇거리는 마음이 드셨더라도 괜찮습니다. 사실 사람은 애초에 장점보다 단점을 더 잘 인식하도록 설계되었거든요.





미국 시카고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카시오포(John Cacioppo)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더 잘 반응한다"라고 말했어요. 이것을 '부정 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긍정적인 뉴스보다 부정적인 뉴스를 더 잘 기억하고, 긍정적 피드백보다 부정적 피드백을 더 마음에 깊이 두는 경향성이 있어요. 어쩌면 우리가 가진 많은 특성 중에서 유독 부정적인 부분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긍정적인 면을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부정적인 면보다 더 많이 언급해주어야 합니다. 긍정하기 어려우므로, 더 많이 긍정하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지요.





'빨강'과 '파랑'



여기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편의상 '빨강'과 '파랑'으로 칭하려 합니다.


'빨강'은 조용하지만 일에 대해서는 욕심이 많습니다. '빨강'은 신중하고 실수를 좀처럼 하지 않는 편입니다. 발이 넓은 것은 아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으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할 때에는 자연스럽게 너스레를 떨기도 합니다.


'파랑'은 걱정이 많습니다. '내가 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은 아닐까?' 내지는 '내가 실수한 건 없을까?'라는 생각에 잠을 설칠 때도 있습니다. '파랑'은 쉬는 시간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피곤해집니다. 특히 그는 전화 통화를 두려워해서 몰래 대본을 작성해서 연습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A와 B 중에 누구를 더 높이 평가할까요?





아마 눈치채셨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둘은 같은 사람입니다. 저의 특성을 각각 상반된 입장에서 서술한 것입니다. 어떤 모습은 사회에서 더 많이 드러내고 또 어떤 모습은 집안에서만 보여줄 때도 있지만, 두 모습 모두 저인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빨강'인 동시에 '파랑'입니다.


이렇게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에 수반되는 감정이나 느낌도 많이 달라집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한동안 저는 저를 '파랑'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어요. 하지만 '빨강'도 분명 제 안에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죠.





기질은 도구일 뿐,

중요한 건 관점이에요.



기질에 관해서 공부를 이어나가면서 생긴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람은 입체적이기 마련인데, '기질'이라는 프레임에 매여서 정작 본질을 못 보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와 아이, 주변 사람들을 계속 관찰하면서 제가 배운 내용을 믿고 의심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 과정 중에 깨달은 것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람은 애초에 자신이 지닌 관점으로 누군가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 또는 타인에 대한 '개념(concept)'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무언가를 이해하려 하고, 그에 대해 나름의 가치 판단을 하고, 그에 대한 믿음을 유지합니다. 만약 '아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라고 말하는 양육자가 있다면, 사실 그 양육자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라는 프레임으로 이미 아이를 해석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 면에서 '기질' 또한 사람을 탐구하기 위해 사용되는 하나의 도구일 뿐입니다. 처음에는 '기질'에 따라 사람들을 분류하고 해석하는 재미에 푹 빠지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그 너머에 있는 '사람'이 보입니다. 마치 우리가 스펙트럼을 이루는 수많은 색에 임의로 '빨강', '노랑', '파랑' 등의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것처럼요.


우리가 '빨강'이라 부르는 색에도 수많은 빛깔이 존재하듯이, 이 세상에 기질이나 성향이 비슷한 사람은 있어도 붙여넣기 한 것처럼 똑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두 번째는 '기질 그 자체보다 중요한 건, 그 기질을 바라보는 관점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매리 S. 커신카가 '까다로운 아이''활력이 넘치는 아이(spirited child)'로 정의한 것은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녀는 '까다로운 아이'에게 붙기 쉬운 부정적인 꼬리표를 다음과 같이 긍정적인 꼬리표로 바꿀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매리 S. 커신카. <아이를 바꾸려 하지 말고 긍정으로 교감하라> 39-40쪽



솔직히 말하면 부모가 아이에게 건네는 말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는 저조차도, 오른쪽의 꼬리표를 적용하여 아이에게 말하는 것이 어색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아이의 눈을 보며 "너는 호기심이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야."라고 말해주곤 합니다. 아이는 평소에 매우 쿨하고 독립적이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만큼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씩 웃으며 저를 안아줍니다.


저 스스로에게도 새로운 꼬리표를 붙이는 연습을 해봅니다. 이제는 실수했을까 걱정이 되는 날 밤에는 '너는 신중해. 실수하면 오래 마음에 담아둘 때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일일 거야. 그리고 아마 다른 사람들보다는 덜 실수하는 편일걸?' 이렇게 너스레도 떨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발전했어요.


그렇게 저는 새로운 안경(관점)에 적응하는 중입니다. 왜곡되지 않고 선명하게 세상(사람)을 보기 위해서요.







수많은 아이들과 부모를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갖게 된 신념 하나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관찰하고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노력은 늘 결실을 맺는다'는 점입니다.


그 대상이 나 자신일 수도 있고, 자녀일 수도 있고, 주변의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들려드린 이야기가 누군가를 이해하고 긍정하는 작은 시작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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