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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도영 Aug 18. 2019

불타는 바다

여행 소회 (26) - 대한민국 제주 06



해가 질 무렵 제주에 도착한 부모님을 기다리며 여행의 첫 날을 마감하고 있었다. 넓게 난 창으로 봉우리가 가득 담겼고, 노을의 예고편처럼 붉은 기운이 푸른 하늘에 조금씩 번져갔다. 봉우리 끝에는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제주에서 만난 첫 무지개인 데다 성산봉에 걸려 있어 꽤나 각별했다.



우리는 다시 당근 주스를 주문했다. 우유 크림이 섞인 주스는 카푸치노처럼 부드러운 거품과 함께라 하나만으로 완벽한 디저트였다. 이번엔 밥을 먹지 않아도 금방 배가 불렀다. 저녁 바다를 머금은 하늘에 듬성듬성 빨주노초 스펙트럼이 비쳤다. 시간이 조금 흘렀어도 아직 무지개는 살아 있었다.



부모님의 도착은 생각보다 늦어졌다. 빨리 보고 싶다는 우리의 기대감에 부담감을 느꼈는지 도착 예정 시간은 자꾸자꾸 뒷걸음질 쳤다. 그와 달리, 한번 고꾸라지기 시작한 태양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수면 아래로 깊이 잠겼다. 거대한 항성은 선수들이 다이빙할 때 흩뿌리는 물방울처럼 짙고 붉은 빛방울을 남기며 사라졌다. 하늘 여기저기 붉은 물감이 빠른 속도로 번져갔다. 순식간에 하늘은 불타는 바다였다.



가게 안의 모두는 함께 감탄하며 노을의 불쇼를 감상했다. 태양이 잠긴 서쪽 하늘은 아직 환한 불꽃이 삐죽거리며 한낮의 여운을 남겼고, 층층이 쌓인 밑 구름들은 불길에 휩싸여 옴짝달싹 못했다. 저렇게 불타다간 재만 남기고 기화해 사라질 것 같았다.



가게의 주인은, 식사도 주문하지 못하고 일행을 기다리며 당근 주스만 홀짝이던 자매에게 알코올이 섞이지 않았다며 칵테일 두 잔을 선물했다. 제주의 에메랄드 빛 바다와 둥근 감귤이 생각날 법도 했지만, 그 화사한 색담 마저 짙고 어두운 노을에 쉽게 삼켜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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