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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도영 Aug 18. 2019

바람이 우리에게 호의적인 것은 이유가 있으리라

여행 소회 (27) - 대한민국 제주 07



뱃고동 소리는 고삐가 풀린 거대한 망아지처럼 배 이곳저곳을 날뛰다 바다로 뛰어들었다. 손님을 반기는 바람도 정신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사방에서 휘날리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물속 말미잘처럼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며 춤을 췄다. 배가 바다를 가르며 생긴 파도는 호쾌했고, 태극기도 우렁차게 몸을 흔들어 댔다. 다시 한번 웅장한 뱃고동 소리가 울리며 우리는 섬사람이 사랑하는 섬, 우도에 도착했다.



우도에도 손님맞이에 분주한 바람들이 있었다. 눈을 감고 바람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자 노력했지만, 하도 정신없이 떠들어대기에 그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며 매우 신이 났다는 사실만 알아챌 수 있었다. 손님으로서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싶었던 나는 눈치껏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정신없는 마중에 기꺼이 응했다.



혹시나 비가 내릴까 걱정했던 마음을 알았는지 바람은 큰 구름들을 모두 멀리 쫓아냈다. 그 날의 바다색을 꼭 닮은 하늘에는 간혹 있는 구름들도 모두 자그마해 혹시나 비가 내릴 걱정도 시원하게 가셨다.


의심하며 찾아간 허름한 밥집의 성게 미역국도 맛이 좋자, 나는 이 여행의 모든 순간이 기분 좋게 맞물려 흘러가는 걸 눈치챘다. 타지의 바람이 우리에게 호의적인 것은 이유가 있으리라. 섬의 바람이, 대양의 파도가 멀리 떠나온 서울의 나를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무언가 나를 알아준 것 같아 바보처럼 뭉클해져 활짝 웃었다.



서로를 부둥켜안은 바다와 하늘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는데, 멀리서 부모님이 흔들리는 몸을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급히 셔터를 두세 번 연속해 눌렀다. 나의 온 우주는 그렇게 카메라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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