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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도영 Oct 13. 2019

우는 것처럼 노래를 불렀다

여행 소회 (29) - 대한민국 순천



의식하고 있을 때 해는 그만큼 빨리 저문다. 습지 전망대에서 저녁 인사를 하는 태양이 보고 싶다는 엄마는 아빠를 이끌고 종종걸음을 치며 저만치 멀어졌다. 날씨가 좋은 9월 주말, 조용히 갈대가 울고 있었다. 어떻게 빨리 떠나겠어. 나는 빨리 걷는 척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바람 탓에 머리 끝이 서로 엇갈리며 춤을 추고 있는 갈대는 마치 노래를 하듯 울고 있었고, 우는 것처럼 노래를 불렀다. 슬프지는 않고 마음만 아팠다. 지는 햇살에 주홍빛으로 물든 갈대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석양에 잠긴 살갗처럼 명확하지 않았다. 확실히 설명을 할 수 없으면 또 어떨까. 순천만의 중심으로 깊이 전진할 때마다 갈대밭을 등지고 걷는 일이 아쉬울 뿐이었다.



습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이렇게 열심히 걸은 일이 아까워 해가 산을 넘어가는 장면은 보는 것이 좋겠다 생각이 든 나도 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이미 갈대밭을 떠나 그들의 울음소리가 작아진 이후였기에 마음먹기는 쉬웠다.



시간을 몇 번 삼키고 정상에 도착했을 땐 이미 구렁이가 지나간 것처럼 굴곡진 습지 위로 철새가 날개를 휘저으며 퇴근 중이었다. 광활한 습지 위에 섬처럼 떠 있는 산 위로 해가 약간만의 거리를 둔 채 다행스럽게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뒷 이야기는 뻔했다. 태양은 일과대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산 너머로 빨려 들어가 다른 곳의 아침을 밝히러 잠시 떠났다. 섬세하게 치밀히 짜인 우주의 일. 거대한 천체의 순간에 죄 많은 지구인들이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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