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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파는 매스미디어

단상

by 김성호 Apr 13. 2021

내가 좋아하는 영화배우 짐 캐리는 '화장실 유머에 웃는다고 당신의 품격이 낮아지냐'며 웃음엔 우열이 없다고 주장했다지만 나는 도무지 그의 주장에 공감할 수 없다. 물론 동일한 시간동안 동일한 강도로 웃는 웃음은 물리적으론 별 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그 웃음과 연관된 조건들을 살펴보면 막대한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로 자아가 자신의 행복을 의식하거나 지적으로 유쾌함을 인지하여 웃는 웃음과 TV앞에 멍하니 앉아 제작진이 의도한 각본대로 웃는 수동적인 웃음이 과연 동일한 가치가 있을까. 이 질문에 나는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 때로 당신은 방송의 자막을 따라 생각하고 방청객들이 웃을 때 따라 웃고 방송이 끝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듯한 허무한 기분에 사로잡히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과연 그런 웃음이 다른 모든 웃음과 동일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정말이지 나는 요즈음 예능프로그램들이 누리고 있는 엄청난 인기와 그 프로그램들의 보잘 것 없는 본질을 보며 우리 사회에 대한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이런 프로그램들의 인기가 시청자들이 말초적인 웃음을 필요로 할 만큼 우리 사회가 각박해졌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입시에 매달려 매일같이 집과 학교, 학원을 오가는 아이들, 가족을 위해 일에 매달려 자기를 돌아볼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어른들, 그들은 자신의 부족한 여유를 TV를 보며 말초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는 게 아닐런지.

가끔 나는 사람들이 <무한도전>이나 <1박2일>, <패밀리가 떳다> 같은 예능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것을 보며 그런 프로그램들이 과연 이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곤 한다. 나 역시 각박한 삶 속에서 잘 웃지 않게 되어버린 국민들을 TV 앞에서나마 웃게 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부인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이런 프로그램들을 잘 살펴보면 시청자들을 TV앞에 앉혀놓고는 저급한 말장난과 몸개그를 일삼고 쉬임 없는 자막으로 시청자들의 일관된 호응을 이끌어내는 말초적인 웃음제조기로 여겨질 때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하고 싶은 점은 내가 예능프로그램들이 가진 해악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다만 이런 프로그램이 우리 방송사들의 황금시간대를 독차지하고 각 방송사의 주류 프로그램으로 군림하고 있는 현 상황이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신문에서 TV로 언론권력이 움직였다고 하는 21세기 오늘, 전 국민의 절대다수가 TV와 라디오 등의 대중매체에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기정사실이다. 그런데 EBS를 제외하고 3개 방송사, 4개 채널에 불과한 지상파 방송들에게 사회적으로 담당해야 할 역할과 의무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더구나 KBS와 MBC는 국가의 지원을 받는 공영방송사인데 말이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주의 국가임을 헌법으로 밝히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대중매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가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더 나은 시민의 존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고 대중매체는 시민들을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더 나은 무엇으로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함께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 대중매체는 그 본연의 역할을 때로 자본주의의 악덕들에 의해 희생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방송사들이 그 사회적 역할과는 상관없이 오직 돈과 인기에 영합하여 프로그램을 짜고 방송을 하는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마땅히 바뀌어야 할 것이기도 하다.

한 번 프로그램 편성표를 살펴보라. 가장 많은 사람들이 TV를 시청하는 속칭 황금시간대에 편성된 프로그램들 중 진정 사회적이고 공익적인 방송이 과연 존재하는가. 이것이 대중매체가 담당해야 할 본연의 역할과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논리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마땅히 더 나은 사회를 추구해야 할 이 나라가 대중매체를 자본의 논리에 잠식되도록 두고 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그 훌륭한 내용과 시청자들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늦은 밤에야 방송되는 모습, 시사프로그램이 늦은 밤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몰리고 예술, 교양프로그램은 예능과 결합하여 저질프로그램으로 전락하거나 폐지되는 모습. 이런 모습들은 우리가 추구하는 더 나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장면들이다.

앞에도 적었듯, 나는 이 글을 통해 예능프로그램의 해악에 대해, 예능프로그램들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예능프로그램들이 시청률만을 이유로 시청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황금시간대를 차지하는 현 상황이 과연 이 사회에 최선인지 문제를 제기하고 싶을 뿐이다. 사회에 보다 긍정적일 수 있는 다양한 기획의도의 프로그램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고 시청자들에게 지적 성장과 감정적 공감, 유쾌한 웃음을 안겨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그리며.


2008. 12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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