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것엔 왕도가 없기에 오늘도 새로운 나를 알아간다.
자립에 반대말은 의존, 자립을 원하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어른아이
어른아이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올해 초, 챗GPT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책임감과 긍정적인 태도 있다. 그런데 독립심과 자기 결정력, 자기 관리와 균형을 유지하는 힘이 약하다.
2. 일상의 일을 스스로 처리하고, 나의 관리감독 하에 계획을 촘촘히 조직할 필요가 있다.
3. 내 가치관과 목표는 뭘까?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는 있지만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많은 걱정과 고민, 두려움이 스친다. 타인의 의견 비중을 너무 크게 두고, 내 의견은 묵시하는 편이다. 그러나 소극적인 표현은 상대방에게 닿을 리 만무하다. 조금은 내 욕심을 낼 필요가 있다.
5. 충분히 휴식하고 있나? 무의미하게 핸드폰 스크롤을 내리며 잉여시간에 휴식시간을 흘러 보내고 있다.
책과 글쓰기, 모임을 통해 나를 알아갔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나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거지!'
자만했다. 나를 알아가는 것에는 왕도가 없더라.
시시각각 변하는 내 감정과 습관이 된 행동
시간, 세월이 흐를수록 영향을 받는 환경과 주변사람들도 조금씩 달라져 간다.
나를 알아가는 건 멈추지 말고, 꾸준히 해야 하는 우리의 과업 중 하나이다.
올해 나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때쯤, 90년 인생을 살고 계신 이근후 박사님의 < '나답게' 살아가는 2가지 방법 > 영상을 만나게 되었다.
행복은 물질적인 비교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불만의 씨앗이 있는 것은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나다.' 하는 나의 확고한 주체성을 갖고 주장을 갖는다면 남이야 억만금을 갖든 나는 요만한 거면 행복하다.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내가 내 걸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다른 사람하고 비교해서 결국 나만 손해를 본다. 내가 갖고 있는 내 자산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가장 만족스럽게 살 수 있을까? 그것이 행복의 기준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어떤 욕구가 생기면 그걸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부단히 그걸 이루려고 노력을 하지만 우리 뜻대로 되는 게 그렇게 많지 않다. 목표가 너무 높고, 내가 가진 능력이 적다든지 그러면 이룰 수 없다. 자기가 가진 능력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성공할 수 있다.
그동안 항상 내 주장은 눌러둔 채, 남의 이야기를 먼저 수용하려 애를 쓸수록 '나'는 사라져 가고, 더 이상 남에게 베풀 여유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는 나를 먼저 돌보기로 했다. 나의 여유가 생겨야 주변 사람들을 돌볼 여유도 생긴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인생은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날이 더 많지만 오늘 하루, 내가 낼 수 있는 체력과 에너지가 얼만큼인지 아는 메타인지를 높여 적재적소에 사용하여 다시금 삶의 균형을 맞춰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부터 삶에 마지막, 눈을 감을 때까지
함께하는 건 결국 '나' 자신이다.
남의 시선에 의해서, 남의 생각에 의해서, 남의 행동에 의해서
바라보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진 않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남의 평가, 비판, 조언, 충고에는 누구보다 귀를 열어 안절부절못하면서
나의 평가, 비판, 조언, 충고에는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듣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고, 나를 위로하고 채워갈 시간을 놓친 채,
공허한 껍데기만 남게 된다.
그 누구도 탓할 수 없고, 그 누구도 내가 '나'답게 사는 것을 도와주지 않는다.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나에게 집중하고, 나에게 물어보고, 나에게 혼도 나보고, 나에게 위로도 받는다.
그리고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나를 끌어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해 본다.
그 끝이 대외적으로 성공이 됐든, 실패가 됐든
나는 다음의 나를 맞이할 밑동을 다져놨기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조각을 모아나갈 수 있다.
그리고 정점을 지나쳐 새로운 길로 걸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