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의윈디 Oct 22. 2023

정해진 삶의 시계에서 살아가는 법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인생 현타가 찾아온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퇴근길.

도어록을 열고, 툭 가방을 내려놓는다.

얼마 남지 않은 출근시간을 계산하며 대충 짐을 정리하고, 씻은 후 핸드폰을 조금 만지다 잠에 든다.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몸을 뒤척이다 무의식에 세계로 빠지곤 한다.

잠이 많은 타입이기에 살면서 불면증이 거의 없는 편인데 어린이집에 근무할 때, 아침당직을 맡았거나 그 주에 담당행사, 미리 준비해야 할 수업준비 등 걱정거리가 있을 경우, 혼자 번쩍 눈이 뜨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눈을 뜨며 찾아오는 건 깊은 현타. '나 잘 살고 있는 건가?' 


긴장 속, 하루하루 정답이 없는 시험을 치르는 기분을 안고 사는 건 불편한 감정이 뒤섞여 방황하게 만들었다. 3년 차 번아웃이 세게 왔을 때, 출근하는 문턱이 버겁게만 느껴지고, 두통이 자주 왔다. 

조금만 미세한 감정을 건드리는 사소한 일이 나타나도 덜컥 눈물부터 나기도 했다. 주말이 찾아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잤다 깨다를 반복했으며 살면서 처음 받는 극한의 스트레스가 숨 쉬는 법을 잊게 만들어 과호흡을 경험했다. 앞으로 나아지는 건 없을 것 같았고, 매일매일이 어두컴컴한 동굴 속을 걸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평소에 그러지 않았는데 밖을 서성인다거나 겁쟁이 쫄보여서 그럴 용기도 없었지만 지나가는 버스와 부딪히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상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했다. 


정말 많이 지쳐있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두렵지만 일상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맑은 날은 손에 꼽고,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 많은 날을 헤쳐나가는 나그네가 되기로 한 것이다. 아무래도 첫 직장이기에 직장 내에서 정말 괴롭고, 힘든 날들이 삶의 전부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과 공포감을 느꼈다. "나 그만두고 싶어." 이 말을 달고 살았다. 지나고 보니 지나가는 버스 정류장에 불구했다는 걸 깨닫고 나서 인생에선 내가 생각지 못한 일들과 컨트롤하지 못한 일들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고, 묵묵하게 주어진 일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다 보면 인생에 볕이 드는 날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뒤로 1년을 더 다닌 후, 첫 번째 직장생활을 마무리했을 때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인생의 가치와 우선순위가 바뀌는 계기를 만나게 된다. 힘들어도 돈을 열심히 모아 목돈 만들기가 먼저였는데 이제는 큰돈보다 적은 돈을 받더라도 건강(육체적 건강과 특히 정신건강)과 가족,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소중해졌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했을 때, 얻는 성취감과 기쁨보다 지친 나를 돌볼 시간이 중요했다.


더 이상 다닐 직장이 사라진 기간이 길어졌을 때는 답답한 마음에 하천 근처 벤치에 앉아 멍하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경치를 바라봤지만 내 선택에 후회는 없었기에 그 시간 또한 받아들이기로 했다. 


살면서 허툰 경험은 하나도 없기에. 기약 없는 쉼과 기다림도 생각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이전 05화 어떤 질문을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