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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잇 Oct 31. 2020

샌프란시스코 여행에서 만난 강아지에게 배운 것

어른이 된 후 그것을 잊고 살고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1번 국도(Pacific Coast Highway)는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이다. 미국 서부 해안가를 따라 시원하게 뻗어 있는 해안 도로로, 샌프란시스코, 산타크루즈, 로스앤젤레스 등의 여러 도시들을 연결한다. 작년 12월, 남편과 함께 3박 4일간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손꼽히는 절경이라는 1번 국도 드라이브를 포기할 수 없어서 하루 동안 차를 렌트해 드라이브를 다녀오기로 했다. 


눈부신 바다를 따라 쭉 뻗은 널찍한 도로를 달리며 창문을 살짝 열자, 머리카락이 시원한 바람에 춤추듯 마구 날렸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웃고 떠들었다. 스쳐 지나가는 창 밖 풍경에 감탄하고 때론 말없이 각자 생각에 잠겨 순간을 만끽했다. 그리고 너무 아름다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풍경을 만나면 굳이 서로 이야기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차를 멈췄다. 


햇빛으로 반짝이는 한 해변에서 잠시 멈추고 산책을 했다.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주인과 함께 공놀이를 하는 보더콜리들이 눈에 띄었다. 주인이 공을 던지면 강아지 두 마리는 서로 경쟁하듯 달려가 공을 물어왔다. 그럼 주인은 공을 더 멀리 던졌다. 이 단조롭지만 평온한 행위가 여러 번 반복됐다. 


그런데 매번 회색 털의 강아지가 갈색 털의 강아지보다 더 빠르게 달려 나가 공을 물어왔다. 반응이 더 민첩하고 속도가 훨씬 빨라서 경쟁이 안 되는 것 같아 보였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자 갈색 털 강아지는 의지를 잃었는지 조금씩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때 우린 재미있는 상황을 목격했다. 회색 강아지가 재빨리 달려가 굴러가는 공을 코로 멈춰 세우고, 뒤늦게 도착한 갈색 강아지가 물어갈 수 있도록 양보해 주는 것이었다! 갈색 강아지는 주인에게 공을 물어 갔고 주인은 칭찬을 하며 새로 공을 던져 줬다. 그 후에도 회색 강아지는 친구를 위해 몇 번이나 공을 양보했다.


Pier 39의 크리스마스트리, 돌로레스 파크에서 즐긴 커피 한 잔, 개방성과 다양성을 상징하는 카스트로 스트리트 등 - 샌프란시스코의 여러 멋진 장소와 순간들이 기억에 남지만, 그중에서도 이름 모를 작은 해변가에서 한 보더콜리에게 양보의 소중함을 배운 순간이 가장 특별하게 느껴진다. 


어느새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사이좋게 공놀이를 마치고 돌아가는 강아지들을 보며 생각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배려해 무언가를 양보한 게 언제 적이던가? 마음의 여유 없이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은 아닐까?’

  

어릴 때 사회생활의 시초인 유치원에서 양보의 중요성부터 배웠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어른이 된 나는 그것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6년 차 직장인인 나는, 어느새 손해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고 맛있는 현지 음식을 즐기는 것도 물론 좋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이처럼 뜻밖의 순간에 깨달음과 감동을 느끼는 행운도 찾아온다. 내가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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