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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잇 Oct 25. 2020

우리의 첫 신혼집을 아름답게 추억하고 싶다

신혼집은 두 사람이 결혼 후 처음으로 함께 꾸리는 보금자리다. 이는 부부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상징하기에, 결혼 준비 과정 중 ‘신혼집 구하기'는 단연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부부에게는 신혼집 결정이 비교적 쉬웠다. 결혼과 함께 내가 남편이 혼자 살고 있던 집으로 이사하기로 한 것이다. 일단 함께 살며 돈을 열심히 모아 몇 년 후 새로운 집을 구하고 이사를 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별다른 비교나 고민을 하지 않고 수월하게 서촌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서촌은 경복궁 서쪽 마을이란 뜻으로, 옛 모습을 간직한 한옥들과 현대적 갤러리 및 카페들이 공존하는 매력적인 동네다. 나는 한적하고 아기자기한 이 동네를 원래부터 좋아했기에 마냥 즐거웠고 이 곳에서의 신혼 생활을 무척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만큼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일단 서촌 부근에는 아파트가 많이 없다. 우리 신혼집 또한 빌라다. 나는 평생을 아파트에서만 나고 자랐기에 빌라 생활에 적응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경복궁역에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간 후 내리면, 우리 집까지 7분 정도를 더 걸어야 했다. 어둠이 깔리는 저녁이면 인적 없는 좁은 골목길이 무서워 일부러 큰길로 더 멀리 돌아가기도 했다. 집 대문 앞에 방범용 CCTV와 가로등이 있는데도, 불이 환히 켜진 아파트 단지와 경비 아저씨의 든든한 존재가 어찌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이 곳에서 오래 살아온 남편은 청와대 근처라서 경찰들이 이곳저곳에 많다며 날 안심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2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좁은 골목길로 가는 건 왠지 조심스럽다.


그밖에도 주차 문제, 회사와 먼 거리 등 여러 문제점들로 스트레스가 조금씩 쌓여가자 우리는 이사할 집을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함께 다니는 회사 근처의 아파트를 계약했고, 이사 날짜를 두 달가량 남겨 두고 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막상 이 동네를 떠나는 날이 잡히자 문득 아쉬운 마음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예쁜 동네에서 언제 또 살아볼까. 그것도 인생에 한 번 있는 신혼 기간에!’


그래서 우리는 이 곳에서의 마지막 두 달을 최대한 즐기기로 했다. 드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최대한 만끽하기 위해 동네 이곳저곳을 자주 산책한다. 노란 은행나무들이 수 놓인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걸을 때도 있고, 청와대 분수 광장을 거닐 때도 있다. 때론 서촌의 예쁜 가게들을 기웃거리고 새로 생긴 삼청동 카페의 빵 냄새에 이끌려 무작정 들어간다. 사직 공원의 벤치에 앉아 울긋불긋한 단풍을 감상하고, 인왕산 둘레길을 걸으며 제법 찬 가을 공기를 즐기기도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전부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왜 좀 더 일찍 깨닫지 못했을까. 새로 생긴 맛집과 카페들은 어찌나 많은지, 이사 가기 전에 다 가볼 수는 있을지 조바심도 난다. 이런저런 불평을 하던 지난 시간들이 아깝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곧 떠나게 되었으니 더 아쉽고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아름다운 동네에서 우리의 결혼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 손 잡고 동네 골목골목을 걸으며 떠올린 생각들, 그리고 추억, 인생, 꿈에 대해 함께 나눈 대화들은 우리의 미래에 든든한 지양분이 될 것을 확신한다. 살아가며 이사를 여러 번 더 다니겠지만, 우리의 첫 신혼집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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