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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잇 Oct 18. 2020

나는 벌써부터 불량 엄마인 걸까

며칠 전, 아는 언니를 오랜만에 만났다. 한 살 차이인 언니는 현재 임신 6개월 째로, 3개월 째인 내게는 ‘임신 선배'인 셈이었다. 같은 임산부로서 공감대 형성이 많이 될 거라는 기대를 잔뜩 하고 나갔다. 


하지만 3시간이 넘는 대화 중에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극히 적었다. 대화는 주로 언니가 내게 임신과 출산에 대해 강의해 주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주변에 아이를 낳은 사람도 거의 없고 그다지 임신 준비 기간이 길지 않았던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이 세계에 발을 디딘 것이었다. 물론 임신 확인을 한 후 육아 카페에 가입하고 육아 관련 기초 서적을 구해 읽기는 했다. 또 보건소에 가서 엽산과 철분을 받아오고 고운맘 카드도 발급받았다. 철분과 칼슘 등 고른 영양소 섭취를 위해 고기와 채소, 우유 등을 많이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언니가 아기를 위해 실천 중인 생활 속 습관들을 들어보니,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은 새발의 피처럼 보였다. 


- 샴푸와 화장품의 성분을 하나하나 확인해서 경피독 (피부를 통해 흡수되는 독)을 유발하는 성분이 있으면 안 쓴다. 바디 샴푸는 아예 안 쓰고 세제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속옷은 무조건 손빨래를 한다.

- 샤워를 너무 자주 하면 안 좋다. 일반 물이 아닌 이온수로만 씻는다.

- 뜨거운 물이 양수에 안 좋아서 절대 뜨거운 물로 샤워하지 않는다.

- 카페인은 아예 입에도 안 대고, 철저한 식단 관리를 통해 주수별로 섭취가 권장되는 영양성분을 집중적으로 섭취한다.


처음에는 머릿속으로 기억해두려고 열심히 노력했으나 너무 많은 정보에 나중에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 밖에도 정밀 초음파, 임당 검사 (임신성 당뇨 검사), 성별 각도 법 (임신 12주 초음파 사진의 태아의 성기 방향을 통해 성별을 예측하는 것)등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개념들에 대해 언니는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물론 정말 유익하고 생산적인 시간이었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나는 점점 위축되어 갔다. 


나는 벌써부터 불량 엄마인 걸까? 커피 하루 한 잔은 괜찮다고 해서 가끔씩 마시고 있었고,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게 하루의 낙이다. 추위를 하도 많이 타서 이미 전기장판을 개시해 쓰고 있었고, 그날그날 먹고 싶은 것 위주로 메뉴를 선택한다. 샴푸와 화장품은 원래 쓰던 거 다 쓴 후 좋은 성분으로 다시 사야겠다고 태평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임신 기간이 나와 불과 세 달 차이인데도, 언니는 이미 엄마가 될 준비가 다 된 것 같아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임산부 화장품'을 검색했다. 화장품의 화학 성분을 분석하는 앱을 다운로드하여 성분을 검색해 보고 유해성분이 0인 화장품으로 구매했다. 


‘오늘부터 뜨거운 물로 하는 샤워를 줄여 나가야지. 전기장판도 다시 집어넣어야지. 육아 기초 서적도, 산모 수첩도 다시 한번 정독해 봐야지. 커피는 최대한 디카페인으로… 아니면 연하게 마셔야지. 그런데 속옷 손빨래를 매일 할 자신은 없는데…’


너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덜컥 임신부터 한 거 아닐까? 좀 더 부지런하게 최선을 다해 뱃속 아기를 보호해야 하는 이 중요한 시점에, 너무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생각해 왔던 걸까. 


원래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페이스대로 살자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러한 안일함이 아기에게 최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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