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가 된다니
2020년 9월 4일 저녁 7시 즈음, 초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와 뭔가 설레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금요일이었다. 평소 같으면 집 앞 와인바나 맥주집이라도 가 ‘불금’을 즐겼겠지만,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적용 중이라 집에서 금요일 저녁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나의 계획은, 집에서 스테이크를 구워 미리 사둔 피노누아와 함께 곁들여 먹으며 지난 한 주의 피로를 푸는 거였다.
함께 퇴근하던 길, 남편이 집 앞 마트에서 스테이크를 사는 동안 나는 약국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샀다. 생리 예정일이 하루 지났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1년 6개월 차 신혼부부로, 이제 임신을 슬슬 준비해 볼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두 달가량밖에 되지 않았다. 설마 벌써 임신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테스트기를 사 본 것이다.
오늘 해볼까? 아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확인하는 것이 제일 정확하다는데 내일 해 보지 뭐.
집에서 남편이 스테이크를 굽는 동안 피노누아를 오픈하고 잔을 꺼냈다. 그러자 ‘아마 임신은 아닐 거야’라고 애써 속삭이던 내면의 목소리가 주춤해졌다. 충동적으로 몰래 테스트기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직감이었을까? 와인을 마음껏 마시기 전에 혹시 모를 불안함을 차단하고 확실히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바로 선명하게 두 줄이 뜨는 것이 아닌가. 심장이 쿵쿵 뛰었다.
진짠가? 이렇게 바로 되는 건가? 몇 번이고 다시 봤지만 두 줄이 맞았다.
남편에게 서프라이즈 이벤트성으로 임신 사실을 알려 눈물 콧물 쏙 빼놓는 사람들의 유튜브 영상들도 봤었고 내심 언젠가 해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역시 나같이 성격 급한 사람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일이다. 또 이미 피노누아를 오픈했기에, 오늘 저녁 나만 혼자 와인을 안 마시고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다.
콩닥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남편이 요리를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
“오빠, 나 임신했어.”
테스트기를 내밀자 남편의 큰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 아기 가져.”
남편은 “진짜야? 진짜?”를 반복했고 이내 나를 꽉 안아주었다.
남편과 함께 부둥켜안고, 생각보다 빨리 아기가 와줬다고, 당장 생길 줄은 몰랐지만 아마 우린 준비됐을 거라고, 앞으로 우리 가족을 건드리는 사람은 가만 안 두겠다고 서로 깔깔 거리며 눈물 흘렸다. 아마 오늘 이 기분은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31살도 3개월 후면 끝나는 지금, 이미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났을 것이다. 24살에 인턴으로 처음 사회생활을 경험했을 때, 26살에 회사에 취직해 일을 시작했을 때,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30살에 결혼했을 때, 그 모든 순간 난 '어른'의 길에 한 발짝 다가섰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어렴풋이 상상했던 어른의 모습에 가까워진다는 게 뿌듯했다. 그런데 엄마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사건이었다. 쉽사리 상상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엄마가 된다니. 엄마는 얼마나 어른스러운 존재인가?
지금은 엄마와 친구처럼 지내고 속마음도 터놓는 사이지만, 어린 시절 나에게 엄마는 나의 기둥이자 나무였다.
엄마는 포용적이고 똑똑하고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아는 존재였다. 언제든 문제가 생길 때 달려가 물어보면 엄마는 항상 답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반항하던 사춘기 때도 엄마에게 지나치게 의지했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서툴게 요리하거나 집안일을 하다가 막히는 게 있으면 마치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보듯 엄마에게 연락한다.)
그에 비하면, 나는 너무 불완전하다. 직장 다니며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를 쉽게 받고, 걱정도 많고 모르는 것 투성이다. 이런 나도 누군가에게 기둥이자 나무가 될 수 있을까? 걱정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일단은 그 모든 걱정과 불안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아기를 갖는다는 것은 진정한 기적이고 축복이다. 지금은 행복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아기를 맞이할 준비를 하려고 한다.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라는 말을 위안 삼아 본다.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엄마가 되어 아기와 함께 성장해 나간다면 그것대로 또 재미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