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놀이보다 반딧불이가 더 좋더라
임신 6주 차, 아기가 생겼다고 말씀드리자 양가 부모님은 매우 기뻐하셨다. 특히 시어머니는 첫 손주가 생겼다는 감격에 눈물까지 흘리셨다고 한다. 나에게 따로 전화 주셔서 축하 말씀과 함께 당부하셨다.
“실컷 엄살 부리고, 큰소리 땅땅 쳐라. 지금이 딱 그럴 시기야.”
내가 그 얘기를 전해주자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지금보다 더 엄살을 피울 수가 있냐고 되물었다.
네 살 연상의 남편은 누가 봐도 다정한 말, 소위 ‘꿀이 떨어지는’ 말은 잘 못 한다. “사랑해"라는 말도 먼저 안 해주고, 내가 먼저 말하면 “나도"로 대답하는 정도다. 남편이 애교를 부리는 건 당연히 상상도 못 할 일이고, 내가 먼저 애교를 부리거나 혀 짧은 소리를 내도 유치한 장난으로 받아친다. 낯간지러운 말을 하면 손가락이라도 오그라드나 보다. 애정 표현을 더 많이 해 달라는 나의 정당한 요구에는, 시도 때도 없이 표현하면 의미가 반감된다는 납득할 수 없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이에 대한 배경에는 근본적인 성격 차이가 있는데, 나는 성격이 급하고 정열적인 사람인 반면 그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차분한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남편이 무뚝뚝하거나 차가운 건 아니다. 맞벌이 부부라 서로의 특기를 고려해 집안일을 배분했는데, 남편은 요리와 담쌓고 살던 나 대신 주방을 책임지고 있다. 또 화장실 청소나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등 강한 비위가 필요한 일들을 도맡아 준다. 가끔 술 한 잔 하면 속마음을 술술 말하기도 하는데, 결혼하고 요리에 취미를 붙인 이유가 “맛있게 먹어주는 네 모습이 좋아서”였다며 예상치 못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물론 다음 날 그 얘길 다시 꺼내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남편이, 내가 임신 발표를 하자 앞으로 자신이 집안일을 다 할 테니 누워있기만 하라고 선언했다. 설거지라도 하려 하면, 숨만 쉬어도 어디 부딪히고 멍들고 다치는 사람이니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거라며 손을 내저었다. 먼저 ‘임산부에 좋은 음식’을 유튜브에 검색하더니 마트에 가서 고기랑 야채를 종류별로 사 왔다. 매일 영양이 풍부하다는 토마토 오믈렛, 삼겹살, 제육볶음, 계란 감잣국, 스테이크 등을 뚝딱뚝딱 요리해주고, 식사를 마친 후엔 침대 가서 쉬고 있으라고 등을 떠민다. 고마운 마음에 남편 뒤로 슬금슬금 다가가 백허그를 해줄라치면, 다정하게 안아주는 대신 매몰차게(?) 방으로 돌려보낸다.
분명 엄살 부리고 큰 소리를 땅땅 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머쓱하게도 그럴 틈이 없다.
낭만적인 말들로 감동을 주는 데엔 썩 재주가 없는 남편이지만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사랑을 넘치게 표현하고 있다는 걸, 결혼 1년 6개월 차가 된 이제야 알 것 같다.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화려한 불꽃놀이보다는 조용하고 은은하게 반짝이는 반딧불이 같은 사람이며, 한여름의 태양처럼 내리쬐기보다는 촉촉하게 적셔오는 새벽 이슬비 같은 사람이라는 걸,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엄살 부리고 큰소리치지 않아도 날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