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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고요 Mar 31. 2020

기다리는 태도에 관하여

불행의 확률을 줄이는 방법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가? 아무튼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어떤 일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다. 수가 막혔을 때는 당황하여 움직일 필요는 없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무슨 일이든 일어난다. 무슨 일이 다가온다. 가만히 응시하면서 어스름 속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기 시작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경험을 통해 이를 배웠다. 이는 언젠가 반드시 움직인다. 만일 이것이 필요한 것이면 반드시 움직인다. 좋아, 천천히 기다리자. - 무라카미 하루키, <댄스댄스댄스>


어릴 땐 부당한 일이 생기면 무작정 부딪히고 소리치고 흔들어야 모든 게 해결되는 줄 알았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든,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든 억울하고 부당하면 일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불부터 켜고 온갖 눈에 띄는 방법들을 다 시도해보는 것. 그리고 이러한 행동 패턴과 마음가짐이 모든 문제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풀어나가기 위한 정도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맞았다. 나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내가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의 입장을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던 때가 있었고, 구체적인 행동을 하면서 자칫 불거질 문제들을 최소화하거나 스스로 구제한 때도 있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지 어언 3년, 나는 그 시간동안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많이 불안하고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부당하다고 느낀 많은 순간들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잠자리가 바뀌고 나의 하루를 채우는 일상의 사건들의 규모와 성격이 급변하면서 낯설고 어려운 난제들을 마주했을 때 일어난 생각과 감정들이 기억의 중심에 있다. 갖가지 시련들은 돌아선 어떤 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되돌리고자 하는 노력의 과정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목도했을 때 느낀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배신감 같은 감정에서 출발하기도 했다.


문제 상황에 대한 원칙적이고 도덕적인 판단을 누군가에게 드러내는 것, 무엇에 대해 논리와 정의를 세워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곧 공격의 대상자가 됨을 자처하는 꼴이 되었다. 조직 내에서 확고한 주관 진취적인 사고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평가되는 순간부터 더이상 내 편에 서서 나를 옹호하고 보호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아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것이어서 앞서 누군가가 나서서 해결하지 못한 그만한 이유들이 있다고. 모난 돌처럼 기나 긴 맥락 파악없이 저항하고 행동하면 그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확장되고 꼬여나갈 때도 있다는 것을 학습해갔다.


슬펐다. 개개인의 작은 노력으로 내가 속한 공동체를, 사회를,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을 스스로 던져버린 것 같아서. 나마저도 내가 그리도 원망했던 무책임하고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그냥 그런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그래서 그간 추구해온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태도와 방식에 대한 황망함으로 한동안 자괴감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었다. 정말 못본 척하고 감내해야 하는걸까? 모든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상기하면서 저항의 마음을 삭혀야 하는지......

방어적 태도로 현상을 바라보고 대응하지 않아 보기로 했다. 


그저 바라보았다. 다음의 무엇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주변을 가만히 둘러보거나 대상을 자세히 들어다보기도 했다가를 반복하기도 하면서. 시선과 생각에 힘을 빼고 나니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저절로 다음의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지켜보는 단계로 넘어가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힘주어 해결을 도모해야 할 문제와 자연스럽게 풀려나갈 문제들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차분하게 문제의 핵을 찾아나가는 눈썰미도 생기고 영리하게 힘을 덜 들이고 풀어버리는 요령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무언가를 함으로써 얻는 실리보다 무언가를 절제하면서 줄인 위험과 부담이 더 크다는 것을 몇 차례 경험면서 그 원리에는 불필요한 감정 발생의 억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관조적 태도의 견지로 말과 행동이 앞서 나가면서 발생하는 오차,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장된 부정적 감정들과 이에 수반되는 신체적 증상들이 축소되는 것이다. 감정 발생의 속도를 늦추고 나니 생각과 행동의 방향이 올바로 서고 적중률이 높아지는 패턴을 발견했다. 음..... 저항감과 분개함을 줄여나가는 것이 단순히 무기력한 어른이 되는 것만은 아니구나. 감정의 조절을 통해 순차적이고 전략적으로 수를 읽어나가는 시공간을 확보하는 것일 수 있겠다는 결론에 닿았다. 이는 문제의 핵과 주변에는 우리가 노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요인보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반드시 빠름과 강력함을 추구하는 것만이 절대적인 옳음은 아니라는 것, 기다리고 응시하는 태도의 끝에는 결국 괴로운 것들의 소멸이 있기 마련임을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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