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 속에서 찾는 고요함
신체 활동이 심적 고요함의 바탕이 된다
몸과 정신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몸의 상태가 정신에 영향을 미치고, 정신 상태가 몸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몸과 정신의 깊은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는 '신체화 증상'이다. 신체화는 정신적인 문제가 소화불량, 호흡곤란, 두통, 근육통 등의 다양한 신체적인 증상으로 구현되는 현상이다. 정신건강의학계에서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잦게 발병하는 울화병(鬱火病), 가슴앓이로 불리우는 소위 홧병 또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신체의 기능 체계에 혼란을 야기하는 증상으로 진단하고 동양의 신체화 증상과 유사한 질병 중 하나로 구분하기도 한다. 가슴이 답답하고,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불쾌한 기분. 그리고 얼굴이 자주 붉어지는 등의 증상들은 모두 정신적 스트레스가 몸으로 전이되어 나타나는 흔한 증상들이다.
본래 동물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도망가거나 이에 맞서 싸우는 것이 본능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생존을 위한 밥벌이 또는 인간관계 형성 등을 위하여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불쾌감과 저항감 해소를 위해 피하거나 부딪히는 선택을 할 경우, 오히려 미성숙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마련이다. 이에 부단히 학습해온 직장 내 상하관계, 도덕과 원리원칙에 따라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욕망을 누르면서 부당한 지시가 내려오거나 무리한 요구를 이행해야 할 때에도 우리는 도망치거나 싸우는 방안을 쉬이 선택하지 않도록 스스로 관리하고 다짐한다. 그동안 해갈하지 못한 내적 불편과 갈등은 자기연민이나 무기력함, 피해의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번져나가기 쉽다.
반대로 과로로 소진되어버린 몸, 자신 또는 타인으로부터 학대를 당한 몸은 끊임없는 정신 혼란, 그리고 마음의 동요 물살에 휩쓸린다. 대부분 현대인들은 사회활동을 시작하고 사무실과 같은 갇힌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신체의 기능을 발휘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힘들다. 하루종일 두뇌에 치중된 신체 활동은 끊임 없는 사고활동의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온갖 사념과 잡념이 일어 정신적 고요함을 앗아간다. 두뇌활동의 절대적인 비중 증가으로 팔, 다리, 어깨 등 신체 부위 곳곳은 본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고 굳거나 퇴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과도한 두뇌 활동은 더 예민하고 정교한 사고활동이 가능하게끔 만든다. 작은 자극에 이전보다 빠르게 반응하는 것, 하나의 사건을 다각도로 파고들며 해석하는 것, 가만히 있어도 끊임없는 사고의 회로가 돌아가는 것은 모두 과도한 두뇌활동의 표지이다. 자기 전 눈을 감을 때까지 넘치는 생각이 너무 많아 피로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나는 것이다.
지나치게 활발한 정신 활동은 감정의 폭발로 이어진다. 어떠한 현상, 상황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무한한 두뇌의 기능을 발휘하고 이를 만끽할 수 있는 인간의 특권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만들 수도 있고, 기억을 조작함으로써 실재를 왜곡하여 인지하도록 교란시키기도 한다. 기분에 따라 부정적인 감정이 한없이 깊어지도록 조정할 수도 있다. 과열된 두뇌활동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할 때 생각을 자유자재로 중지할 수 있는 통제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정신활동을 멈추는 것은 쉽지 않다. 자신이 주로 어떠한 생각에 사로잡히는가, 그 생각의 강도와 빈도가 어떠한가, 생각의 비극적인 방향으로의 확장을 스스로 인지하고 통제할 수 있는가를 매번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감정적 억압으로 인한 고통 또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폭발 상황에서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해소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정신 건강은 마음이 호수처럼 잔잔하고 고요하게 유지되는 상태와 같다. 정신적으로 힘들고 괴로울 때 자신의 상태를 끌어올릴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은 감정적 응어리를 해소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애인 또는 주변 친구들이나 가족들과의 친목활동, 글이나 명화를 감상하거나 음악을 듣고 맛있는 것을 먹는 감각활동, 무엇을 만들고 그리는 창작활동, 마사지를 받고 반신욕을 하는 등의 휴식활동 등이 있을 수 있다. 그 무엇이든 자신이 원할 때 가장 빠른 시간에 부담스럽지 않은 노력과 비용으로 누릴 수 있는 해소법 1개만 찾더라도 정신 상태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때로는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들 만큼 깊은 감정적, 정신적 고통으로 어떠한 활동에도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해질 때가 있다. 이렇게 자신만의 해소법이 무용해지는 순간 우리는 극심한 외로움과 괴로움의 절벽에 떠밀리게 된다. 갑자기 또는 서서히 식욕, 성욕과 같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 해소를 향한 갈망이 약해지고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본인의 상태가 건강하지 못함을 영리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이는 정신과 몸의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신호다.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정신과 몸이 시소와 같이 균형을 이루는 관계임을 떠올리는 것이다. 보통은 지나친 정신활동이 야기한 이상 징후이므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두뇌가 딱 본래의 역할만큼만 적절히 기능할 수 있게 활동 강도와 시간을 조정하는 것이 관건이다.
정신이 괴로울 때면 무조건 몸을 움직여야 한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시면서 팔, 다리를 움직이고 어깨를 펴고 머리를 뒤로 젖히고... 피가 위 아래로 힘차게 돌 수 있도록 근육을 수축하고 이완하는 동작을 하면서 몸을 깨운다. 한 마리의 동물이 된 것처럼 정신없이 내달리고 뜀박질을 하면서 땀을 내는, 별 대수롭지 않은 활동만으로도 정신과 몸의 관계는 순식간에 균형적으로 회복될 수 있다.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는 동안 나를 괴롭히는 수많은 생각은 저절로 증발된다. 신체 활동이 마무리 된 이후에는 머릿 속에서 한없이 부풀려진 문제들이 바람빠진 풍선처럼 작고 간명하게 정리가 될 것이다. 주변 환경과 생존하는 방법은 많이 달라졌지만 인간의 신체 구조와 운영 원리는 동일하다. 아프고 불편한 것은 모두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순리에 가장 가깝게 닿아있는 방식을 따르면서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가게끔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