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하면 어떻게든 된다
해럴드 힐먼은 충분한 자격을 지닌 사람이 스스로를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고 의심하여 성공이나 성취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증상을 '사기꾼 증후군(Imposter Syndrome)'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자기 노력을 통해 이룬 것들에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고, 언젠가 자신의 밑천이 만천하에 드러날까봐 두려워하는 감정에 압도되는 상태를 뜻한다. 이는 남을 존중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의 미덕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성공을 이루어낸 후 그것에 어울리는 인정과 보상을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는 사기꾼 증후군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회 초년생은 회사조직의 문화, 원리원칙에 대한 이해가 없다. 따라서 자신이 맡은 일의 중요도와 순서를 아는 것부터가 과제다. 실수에 대한 관대함, 상사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정신없이 조직을 이해하고 업무 진행의 방식을 터득해나가는 과정에서는 자신이 해낸 일에 대해 평가하고 돌아볼 여유가 없다. 그저 당장 눈 앞에 닥친 과제를 해내는 데 집중하다보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해낸 담당자로서 인정받은 순간이 온다. 때로는 연차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더 다양한 일, 심화된 일, 많은 양의 일을 주관하고 책임을 지기 시작한다.
나 또한 그런 수순을 밟았다. 수습기간을 거쳐 담당업무에 대한 적응을 끝내고 나니 더 큰 책임이 따르는 낯설고 어려운 업무가 새롭게 주어졌다. 그 당시 나는 내게 주어진 일들이 나의 직급과 경력에 비해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는 과정에서도 부족함이 탄로날까봐 두려웠고, 실력의 바닥이 드러날까봐 불안했다. 모두가 납득할만한 정도로 일의 완벽성을 높이기 위해 집착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업무 단계를 세분화하여 진행하였다. 작은 일에도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쏟는 만큼 업무 진행에 작은 차질이 생기면 극도로 예민해졌고 스스로 스트레스 상황에 몰아넣는 슬럼프를 겪게 되었다.
그 후로 꽤 오랜기간동안 사기꾼 증후군에 사로잡혔다. 상사와 동료의 인정과 칭찬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왔고, 익숙한 업무에서 벗어나 새롭게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을 맡게 될 때마다 심리적 중압감은 커져만 갔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정도의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결과가 발생할까봐 걱정하고, 작은 실수가 발견될 때면 여태껏 쌓아온 경력과 평판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몇날며칠을 괴로워했다. 완벽하게 알지 않으면 절대 안다고 말하지 않고, 항상 이루어낸 것보다 아쉬운 것을 조명하면서 전전긍긍했다.
어느 날, 성과의 흠결이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로 이어질까봐 괴로워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일을 처리해낼 특별하고 합당한 능력을 갖췄는지를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공은 온전히 누군가의 능력 하나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며 타인의 조력, 때맞춤, 환경의 돌변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따라서 우리가 삶을 예측할 수 없듯이 자신의 능력을 미리 확인하고 철저하게 계획하더라도 일의 완벽성은 아무도 보장할 수도 없다. 어떤 일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왜 인정하지 않았을까? 내 일에 대한 평가가 결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왜 알지 못했을까?
운이 좋아서 또는 자신의 특장점이 발휘될 수 있는 영역이어서든 자신이 이루어낸 성공을 통해 인정을 받게 되었을 때는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면 된다. 그리고 그것을 도약이나 자기혁신의 발판으로 삼는 방법을 궁리하는 데 집중을 해야 한다. 남들에게 한껏 잘난 사람임을 뽐내거나 완전 새로운 업무를 경험해보는 기회로 삼는 등 자신에게 보다 유익하고 생산적인 기회의 순간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더 큰 과제나 책임을 맡게 되었다면 일단 자신감을 가지고 움직이면 된다. 시작하기만 하면 어떻게든 끝이 나고 결과는 나타나기 마련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기꾼이 되는 것을 자처하는 것도 좋다. 때로는 실제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아는 척을 하고 실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유리하게 반전시키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당신이 실제로 얼마나 아는지 확인하고자 달려드는 사람이 있지 않는 이상 그 정도의 뻔뻔함과 여유, 의기양양함으로 자신의 가치를 더 높게 연출할 수 있다. 앞으로 어떻게 일이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는 의연하게 임시변통으로 잘 처리하기만 하면 된다. 스스로 사기를 북돋우고 자신 있게 임하는 훈련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