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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캣 Dec 27. 2023

그녀의 MBTI

아! 물통!

아! 장갑!

아! 도서관 책!


딸아이는 학교에 뭔가를 두고 오는 일이 잦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아니고, 거의 매일이다 싶었다.

처음에는 "뭐 그럴 수도 있지. "싶었다가, 나중에는 "이럴 수도 있나" 싶었다.

물통을 여러 개 넉넉히 준비해도 결국엔 마법처럼 다 사라진다.

딸아이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디에 둔 건지 기억나?"라고 물으면 그녀는 두 어깨를 으쓱이며 "몰라."가 전부였다.

좀 혼내야 하나 싶다가도 이게 뭐 혼날 일인가 싶기도 하고.

며칠 전에는 학교 도서관책을 빌려서 사물함에 넣어두었는데, 나중에 보니 없단다. 도서관 가방 그대로 사라졌다고 했다. 결국엔 도서관 책들을 그렇게 학교에서 잃어버렸다.


뭔가 해결책 필요할 것 같았다. 마침 아이가 손에 들고 있던 키체인이 눈에 띄었다. 핑크색 변기모양의 키체인이었다. 아이 가방에 키체인을 달아주고 키체인에 체크리스트를 적어줬다.

물통•스낵박스•도서관책•수영가방장갑

자꾸 까먹으니까, 하교 전에 체크리스트를 보면서 하나씩 첵첵첵 하고 나오라고 했다. 변기모양의 키체인이 웃겼는지, 첵첵첵 하는 내 모습이 웃겼는지, 딸아이는 알겠다며 통쾌하게 웃었다.

체크리스크가 과연 통할까. 마음속으로 궁금했다. 체크리스트는 해결이 될 거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나만의 실험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체크리스트를 체크하는 것 마저도 까먹고 신경을 안 쓰겠지.

재미로 봤던 딸아이의 MBTI는 ESFP다. 그중 성격 특징 중의 하나가  유독 눈에 뜨인다.

-건망증이 있는 편이다.(이런 것도 타고나는 건가. )

-잘 먹고 잘 자고, 생각이 단순하다. 고민하다가 그냥 잠든다. (어떻게 알았지?)

-이야기할 때 요점과 더불어 부연 설명을 많이 덧붙인다.

-인생을 하루하루 즐겁게 살려고 한다. (크. 즐겁고 좋네.)

-신나고 재미있는 성격으로 분위기 메이커의 역할을 한다.


딸아이의 성격특징들은 다시 읽어도 신기하다. MBTI용하네.

자유로운 영혼의 슈퍼스타형이란다. 

공부 잘하는 MBTI는 아닌 같기도 하고...

엄마 아빠와 참 다른 성향이다.

재미로 보는 MBTI였지만 딸아이를 이해하는데 꽤 도움이 됐다.

성향이 다른 딸아이를 키우면서 늘 관찰해야 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단정 짓는 건 조심스러웠다.

결론을 빨리 내리는 건 걸림돌이었다.

내 감정만 격하게 만들 뿐이었다.

"저렇게 덜렁대서 나중에 어쩌려고..." 이런 생각은 위험하. 

인지하는 순간 차단해버려야 한다.

'엄마는 걱정이 너무 많아.'딸아이의 말이다.

듣는 순간 헉했다. 들켰군. 미안해.

맞아. 내일 걱정은 내일 하고.

그래, 너는 덜렁대는 게 아니야.
오로지 눈앞의 현재에 집중하는 것뿐이야.


좀 까먹고 덜 챙기면 또 어때.

뭐가 그렇게 큰 일이라고.

그때그때 알아서 해결이 되겠지.

잘 먹고 잘 자고, 크게 걱정도 안 하고, 불안한 것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고, 사소한 것에 매달리지도 않는 딸아이를 보면서 오늘도 엄마는 스스로를 돌아본다.

역시 그녀는 좀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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