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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캣 Jan 03. 2024

육아체질이 따로 있을까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이런 말은 욕먹기 쉽다. 회사 체질인 사람이 어디 있냐고. 다 먹고살려고 하는 노릇이지. 그도 그럴듯하다. 같은 맥락일까. '육아체질이 아니라서요.'는 욕먹을 멘트일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래도 육아체질이 따로 있다면 좀 더 쉬웠을까 라는 생각으로 적어본다. 



기질적으로 오감이 예민한 편이라면, 사실 육아뿐만 아니라, 일상이 힘들다. 타인에게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소리나, 냄새가 유독 나에게만 자극으로 다가온다면 괴로운 일이다. 수면을 취할 때도 빛에 초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일반 커튼으로는 안되고, 암막을 고집하거나, 아주 작은 틈새도 허락이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집에도 한 명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그냥 오감이 초예민한 센서를 타고난 것이다. (이런 성향은 진화적 관점으로 봤을 때 생존이 불리하다는 논문도 있다...)


나와 남편은 목소리가 모두 중저음이다. 말을 해도 조용조용한 편이다. 딸아이는 목소리가 우렁차다.  그냥 우렁찬 게 아니고, 뭐랄까. 단전에서 끌어올리는 소리라고나 할까. 그냥 물리적인 공기의 진동이 아니고, 호흡이 받쳐주는 기의 진동이라고 할까. 물론 건강하고 감사한 일이다. 딸아이가 신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엄마는 내용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음의 높이만 들린다. 그렇다고 업된 아이의 흥을 깨고 싶지 않다. 잘 자지 못했거나, 몸 상태가 안 좋을 때는 더 괴롭다. 고막이 때려 맞는 느낌이다. 그럴 때면 멍 때리 듯 시스템에서 로그아웃한다. 일종의 마인드 줌 아웃이라고 할까. 그러면 신기하게도 귀에서 울려 퍼지던 소리가 흐릿해진다. 그렇다고 대놓고 멍 때리면 안 된다. '엄마 내 말 듣고 있어?'라며 아이가 바로 캐치한다. 눈은 그녀를 주목하면서 소리만 차단해야 하는 고난도(?) 스킬이다. 같이 업되어서 신나게 공감해 주면 최상이겠지만, 그게 안되면 적어도 최악을 피하는 방법이다.


태생적으로 걱정 근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당황한 상황에서도 그 상황이 웃기다고 웃음부터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큰 일 날 일이 별로 없는 사람들. 이런 성향은 육아에 최강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극진한 돌봄이 필요한 신생아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토들러, 미운 일곱 살에서 무서운 게 없는 사춘기까지, 육아는 그야말로 서프라이즈 대잔치이다.


딸아이는 걷다가도 넘어지고, 뛰어가다가도 걸려 넘어지고, 거실에서 공놀이를 하다가도 넘어진다. 정말 코앞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뻔히 보면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이었으면 막을 수 있었을까. 다행히 그녀는 크게 아파하지도 않고, 금방 낫기도 한다. 그냥 그러면서 크는 건가 보다. 신이 아닌 이상, 아이가 웃는 모습도, 우는 모습도 그저 지켜보는 일도 육아의 일부분이다.


혹시 당신도 나처럼 불안이 높은 데다가 완벽주의 성향이라면... 육아를 하면서 제대로 박살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육아는 한 번 해볼 만하다. 당신도 당해보라는 의미가 전혀 아니다. 그 어떤 것도 육아만큼 당신의 완벽주의를 깨부수진 못하리라. 깨지다 보면 첨엔 스스로 오뚝이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말이다. 일어나기 싫은 날도 있다. 어차피 다시 넘어질 텐데 라는 생각이 드는 날... 그러면서 계속 깨지다 보면 희한하게 초탈해진다. 일종의 충격요법이랄까. 오뚝이가 춤을 춘다. 넘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음악이 들리는가. 결국 오뚝이는 비틀거릴 뿐, 넘어지지 않는다.  마침내 틀을 깨버리고 자유로워진다.

넘어질 것 같다는 불안을 버리는 순간, 삶은 축제의 향연이다.




체력이 강한 편이라면 당신은 절반 이기고 시작한 것이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저질체력에 약골이다. 딸아이는 또래 아이들 평균 이상의 체력이다. 그냥 에너지 뿜뿜이다. 가끔 대형견을 산책시키며 끌려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안쓰럽다. 딸아이의 리듬에 맞춰 놀다 보면, 정말 질질 끌려다니는 느낌이다. 소파는 늘 점프 점프하는 공간이고, 청소기를 돌리면 라바 몬스터라고 소리 지르면서 뛰어다닌다. 라바 몬스터(청소기를 든 엄마)는 굉음을 내면서 추격전을 한다. 고양이도 딸아이와 같이 놀다가 소리도 커지고 귀찮아지면 캣타워로 도망간다. 딸아이가 닿지 못하는 높이이다. 그녀는 강아지를 키워야 할 체질인가. 같이 방방 뛰면서 놀아주는 강아지 말이다.


좀 편하게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체스도 놀아보고 종이접기도 해 보지만 15분을 넘기지 못한다. 앉아서 책도 보고 조용히 노는 아이들도 있던데. 그녀는 아니다. 아빠는 비행기도 태워주고 추격전도 하고 딸아이가 원하는 대로 격하게 잘 놀아주지만 금방 체력방전된다. 짠하다. 체력방전된 아빠의 주특기는 누워서 놀아주기이다. 그나마 좀 오래 같이  놀 수 있는 게임은 보드게임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보드게임이 많다. 실내보다는 실외가 그녀의 에너지 방출에 도움이 된다. 집콕이 편한 내향인 부부는 에너지 방출을 못해서 방방 뛰는 그녀를 위해 주기적으로 외출을 한다.

대자연은 그녀의 에너지를 무한하게, 너그럽게 받아준다.



대자연 같은 부모가 되어주고 싶지만, 그러기엔 부족한 게 많다. 셋도 무난하게 키우는 집이 많은데... 둘째는 엄두가 안 난다.(그러기엔 나이도 있고...) 그러니 부모가 되었지만,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딱히 육아체질은 아니다. 그런들 또 어떤가.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웃었고, 많이 울었고. 그저 유별난 (까칠하고 예민하고 저질체력인) 부모에게 와주서 고맙고, 미안하고. 세상을 다 가진 듯 웃어주는 아이를 보면서, 꼭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아이를 보면서... 깨닫는다.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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