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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캣 Jan 17. 2024

게으름뱅이처럼 살고 싶어

여느 때와 같이 잠들기 전 스토리 타임이었다. 딸아이가 골라온 책은 <소가 된 게으름뱅이>이었다. 한글을 혼자 읽는 게 아직 힘든 딸아이는 여전히 읽어달라고 한다.


'옛날, 어느 마을에 일하기를 아주 싫어하는 게으름뱅이가 살았어요. '

'게으름뱅이가 뭐야?'아이가 묻는다.

'음, 하루 종일 놀고먹고 잠자고 하는 사람...'

'게으름뱅이는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놀기만 했어요.' 읽던 책을 계속해서 읽었다.

아이가 잠자코 듣고 있더니 입을 뗀다.

'나는 게으름뱅이처럼 살고 싶어.'

엉?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게으름뱅이라는 단어에 오해가 있는 걸까...?

당황스러웠지만 내색을 안 하고 이야기를 읽었다.

마음속에서는 큰 파도가 일고 있었다.

뭐지?

뭐라고 말해줘야 하나?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엄마의 마음속 독백은 늘 치열하다.

독백이지만 여러 캐릭터들이 치열하게 논쟁하고 싸운다.

이것도 일종의 인격분열인가.

책은 게으름뱅이가 소로 변하여 고생을 하다가 나중에 뉘우치고 부지런히 일하여 큰 부자가 된 이야기다.

성실한 태도를 일깨우는 이야기라고 책 뒷면에 써져 있었다.

성실한 태도를 일깨운 건지는 미지수고, 딸아이는 게으름뱅이라는 단어는 확실하게 기억한 모양이다.

그리고 소로 변한 부분이 마법 같아서 재미나고...

앤딩은 부자로 된 해피앤딩이고...

이야기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엄마만 생각이 많아졌다.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어보면 딸아이는 '유니콘'이라고 했다.

그... 그런 것도 장래희망이 될 수 있구나...?

'그런 거 말고, 또 있어? '

'응! 고양이!'

음...?

고양이가 되는 게 장래희망이라고...?

며칠뒤, 친한 언니랑 커피 마시면서 딸아이의 게으름뱅이 이야기를 해줬다.

언니는 웃는다.

'걔 좀 뭘 아네. 나도 게으름뱅이처럼 살고 싶은데. 흐흐흐'

하아.

웃자.

웃고 말자.

게으름뱅이처럼 편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뭘 또 그렇게 잘못된 거라고.

힘겹게 토지를 갈아야만 먹고살 수 있는 인간의 운명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순간부터 시작된 걸까.

산으로 가는 이 글은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딸아이의 관찰일기는 계속된다.

오늘도 육아는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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