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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캣 Jan 10. 2024

어른은 재미없어

All grown-ups were once children

'엄마, 어른이 재밌는 거 같아?'

?

'글쎄, 00 생각은 어때?'

'어른은 재미없어.'그러고는 굵직한 목소리로 연극톤으로 흉내를 낸다.

'책 읽어야 해. 내버려 둬.'

별생각 없이 듣고 있다가 빵 터졌다.

아, 꽤 철학적인 질문인 줄 알았는데... 엄마 흉내 낸 거였어?

이런, 엄마가 재미없는 어른이었구나.

'엄마는 책이 재밌는데?'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엄마가 책 읽는다고 00랑 안 논다는 얘기였구나.

'그럼 00도 책 보고, 엄마도 책 보고, 같이 보면서 놀?

'그건 노는 게 아니야.' 그녀는 단호하다.

'그럼 뭐 하고 싶어?'

'엄마랑 같이 슬라임 놀고 싶어.'

! 슬라임...

'음... 근데 엄마는 슬라임... 만지기 싫은데...'

'아, 같이 놀자. 엄마랑 놀고 싶어~'

딸아이는 슬라임을 좋아한다.

아빠 면도크림을 넣으면 더 말캉해진다면서 크림도 짜 넣고, 여러 컬러도 넣어서 믹스하고, 토핑도 여러 가지로 넣으면서 신나게 놀아준다.

딸아이가 좋아하니 늘 세트로 다.

엄마가 슬라임 사주고 노는 걸 지켜보는 거로는 안 되는 건가?

같이 만지면서 놀아야 만족스러운 건가?

재미없는 어른 이야기까지 운운하는데... 그래, 놀자.

딸아이는 예스라고 외치면서 세트로 가져온다. 

여러 가지 컬러에, 액티에, 토핑에...

'어떻게 하는 거야?'라는 한마디에 그녀는 신나게 설명을 해준다.

하나씩 보여주면서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순간 슬라임 유투버인 줄... 저렇게 신날까.

아이가 설명해 주는 대로 슬라임에 먼저 액티를 넣고 주물렀다.

아. 이 물컹거리는 느낌... 피부에 들러붙는 끈적끈적한 느낌...

오만상을 찌푸리는 엄마가 웃기다고 그녀는 큭큭거린다.

'아, 엄마 너무 웃겨' 이러면서...

컬러를 넣어서 믹스해 보라고 한다.

진한 파란색 슬라임이어서 핑크를 넣어도 크게 색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제안대로 노란색을 넣었더니... 이상한 컬러가 되면서... 음... 꼭 마치...

눈살을 찌푸리며 과장된 리액션을 하니 그녀는 또 깔깔거리면서 웃는다.

굳이 말을 안 해도 우리는 같은 걸 상상하고 있었다. 

이런 걸 원했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놀이를 엄마도 같이 즐기면서 노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걸까.

비 온 뒤 물웅덩이를 보면 꼭 들어가서 첨벙거리면서 신나게 논다.

신발이 젖던, 옷에 튕기던... 크게 개의치 않는다.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신나게 눈사람을 쌓고 눈싸움을 하는 아이.

아이들은 춥지도 않은가 보다.

아직도 '놀아줘'를 노래처럼 부르는 아이, 외동이라서 그런 건가.

좀 더 크면 방문 잠그고 헤드폰 하고 음악 듣고 그러겠지?

친구가 더 좋다고 엄마 아빠 저리 가라 그러겠지?

막상 그러면 또 섭섭할까.

인간의 마음이란...

가끔 딸아이를 보면서, 나도 어린 왕자가 말하는 그런 어른이 돼버린 걸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막상 중요한 질문은 할 줄도 모르는, 숫자에만 관심 있는 식상한 어른말이다.

상상력과 창의력은 어딘지도 모르게 갖다 버린 채 틀에만 갇혀있는 그런 어른 말이다.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들이 커서도 예술가로 남을 수 있게 하느냐이다. 

                                                                                   -파블로 피카소


그래, 창의력과 상상력은 키워주는 게 아니었지.

호기심 덩어리로 태어나는 아이들을 꺾지만 않기를.

아직은 네가 원할 때, 엄마 아빠랑 노는 게 즐거울 때, 우리 신나게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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