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있던 둘째가 거든다. 둘 다 아무리 살펴봐도 콧물도 흐르지 않고, 머리에 손을 대보아도 미지근하다. 나는 오늘의 일정 등을 생각하며 잠시 고민하다가, 아이들의 꾀병에 눈을 감아주기로 한다.
요 며칠 일교차도 큰 데다 부쩍 건조해졌고, 추석연휴 뒤에 한글날 휴일까지 겹쳐 이동과 행사가 많았기에, 쉬고 싶었을 몸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 결석 문자를 보내고, 오후에 잡혀있는 허벌리스트 단톡방에 글을 올린다. 지난번 수업시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와도 되냐고 선생님과 수강생분들께 직접 여쭤보고 허락을 구하긴 했지만, 한 번 더 양해를 구한다.
허브밭에 가자니 아이들은 이불을 차고 벌떡 일어난다. 거실에 나와 어젯밤 가지고 놀던 놀잇감들을 만진다. 나도 두 아이들의 준비물을 챙겨 등원 시간에 맞춰 가지 않아도 되니, 조급함없이 여유롭게 아침을 준비한다.함께 아침을 먹고서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엄마는 글을 쓸 테니, 너희는 하고 싶은 걸 해라."
지금 쓰고 보니 한석봉 어머니의 현대판 버전의 대사가 아닌가 싶다.ㅎ
두 아이들은 방에 들어가더니,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며 그림을 그린다. 그 모습에 나도 열심히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렸다. 전날부터 썼던 글을 마무리해서 올릴 때쯤 아이들은 하나씩 그림을 가지고 내게 짠 하며 내민다. 첫째가 먼저 '상상 속 허브밭'을 그렸고, 둘째는 그를 따라 그린 그림이었다.
상상 속 허브밭
감탄사를 몇 번 날리고, 준비를 해서 허브밭으로 출발한다.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 거리에다,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고도 마을버스를 타고 가야 하니, 아이들이 내려서 물어본다.
"엄마, 여기 아직도 서울 맞아?"
귀여운 질문에 한 번 웃고선 허브밭 옆 강의장에 들어선다. 마더팅처를 만들기 위한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아이들은 사뭇 진지하게 수업을 듣다가 밖으로 나간다. 나도 따라나가자 보조강사 선생님께서 내게 수업을 들으라고 아이들을 봐주시겠다고 하셨다. 그 배려에 깊이 감사하며 더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강의 후엔 모두 허브밭으로 향했는데, 메리골드가 만개한 허브밭에는 가을빛이 완연했다. 아이들은 퍼머커쳐 농법으로 키워진 허브밭의 여러 식물들과 그 사이의 다양한 곤충들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내가 준 바구니를 들고 여러 허브들의 잎을 따보기도 하고, 강아지마냥 강사 선생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궁금한 것들을 여쭤보기도 했다.
선생님께서는 스피아민트를 수확하시다가 아이들에게 민트를 코에 넣어보라 하셨는데, 민트를 코에 말아 넣으면 두통이나 비염 증상 완화에 효과가 있다고 하셨다. 그 말씀에 둘둘 허브를 말아서 넣고 나니 풀콧수염이 돋아난 서로의 모습이 웃겨서 하하 웃으며 사진도 찍었다.(그러고보니 진짜 효과가 있었는지, 아침에 코가 막힌다고 했던 아이들의 칭얼거림이 싹 사라졌다!)
아이들과 마라타니, 코스모스 등 여러 가을꽃들로 꽃다발도 만들고, 다른 선생님들과 세인트존스워트, 쑥, 쐐기풀 등의 허브에다 럼주를 넣어 마더팅처도 만들고, 입술 포진 등에 효과가 있는 레몬밤과 샐러드를 만들기 좋은 쏘렐 등을 수확하고 나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 벌새를 닮은 박각시나방도 만나서 신비로운 마음으로 따라다니기도 했다.
박각시나방
"엄마, 내일 여기 또 올래"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고 하자마자, 입을 모아 얘기하는 아이들을 보며, 이번에 이사를 갈 때는 자연에 가까운 곳에서 텃밭을 함께 가꾸며 사는 모습이 떠올랐다. 첫째가 내년에 초등학교에 갈 나이라 학군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자연보다 좋은 학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온 아이들이 자신들이 직접 본 허브밭을 그렸는데 아침에 그린 그림과 너무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보고, 그 생각이 더 커졌다. 자연의 변화와 생태계의 조화로움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자라나는 아이들은 저절로 그 안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배우고, 뭇 생명들을 존중하게 될 것임이 분명했다.
나도 아이들도 지구 어머니 안에서는 그저 작은 아이이자, 거대하고도 촘촘한 생명그물 속의 생명체라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싶다. 익어가는 열매가 땅으로 돌아가듯, 나날이 땅에 더 가까워지며, 땅처럼 정직하고 넓은 품으로 인연이 된 모두를 깊이 안아가며 살아가고 싶다. 늘 나를 일깨워주는 작고, 귀엽고, 따뜻하고, 보드라운 두 스승들과 함께 자라나는 일상을 소중하게 보듬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