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 학교에서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면, 세상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시작은 엄마의 책장에서부터 일어났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기대했다가 무언가 단단히 속은 기분이 들었던 때, 엄마의 책장에서 발견한 레오버스카글리아의 책은 내 삶의 새로운 지표가 되어주었다.
레오버스카글리아는 제자가 자살은 한 뒤, 많은 현대인들이 우울증 등 정신병을 앓으며, 자책감과 자괴감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 그는 '사랑학'이라는 과목을 만들어, 남은 생동안 사랑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 헌신하며 살았다. 그의 책들을 읽으며, 나는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며 배우고 연습하며 익혀야 할 가장 중요한 과목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
히말라야 자락 숲 속에 있던 한 명상센터에서 만났던 명상 안내자는
“사랑은 무엇인가요?”
라는 나의 질문에
“사랑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말과 마음과 행동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런 사랑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싶어 그 뒤에 인도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하우스에 갔다. 그곳에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봉사를 하시는 수녀님들과 전 세계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
나는 프렘단이라고 하는 곳에 배치를 받았는데, 처음 내가 했던 일은 여러 오물이 묻어있는 이불과 시트 등을 빠는 일이었다. 평소에 잘해보지 않았던 큰 빨래를 손으로 돌려 짜는 일을 하니, 금방 손바닥 껍질이 벗겨졌다. 실제로 그곳에서 했던 일은 빨래, 청소, 식사 도움 등 매우 작고도 사소한 일상의 일들이었다. 하지만 가난하고, 아프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사이에서 예수님을 보셨던 마더 테레사와 같은 눈과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려고 노력할수록 모든 일들에 의미가 더해졌다.
‘저는 결코 큰 일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작은 일을 큰 사랑으로 할 뿐입니다.’
라는 마더 테레사의 말씀이 더 깊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그곳에서 읽은 마더테레사의 명언집이나 책에서는
‘세상을 치유하는 길은 자신의 가족을 돌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 사람을 보면 그들을 도와줄 손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면 돼요.
서로 손잡고 피부를 맞대어 접촉함으로써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등의 말씀도 나와있어, 나는 그 뒤에 국내외의 여러 가족치유 워크숍이나 상처를 치유하고 소통과 공감을 돕는 프로그램 등을 배우고, 대학원에서 상담을 전공하며 나 자신을 치유하고,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기법 등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러한 배움들을 나의 삶과 일상에서 연습하고, 소화시키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를 나누게 되었다. 내가 나의 상처와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만큼 내 안의 품이 넓어져 타인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여러 학교나 교육청, 대학교의 상담센터나 관공서, 정신건강센터, 평생교육원 병원 등 인연이 닿는 장소에서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을 만나왔다. 서로를 잇는 사랑의 원 안에서, 뱃속에 있는 태아부터 임종을 앞둔 분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을 만나오며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랑은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사랑은 서로 따스하게 맞잡은 손이고, 정성을 다해 차린 밥상이고, 부드러운 눈빛과 손길이며, 마음에 꽃을 피워주는 봄비 같은 말이고 행동이라는 것을 나는 수없이 목격해왔다.
강의에 참여한 사람들이 웃고, 울며 얼굴이 환해지고 몸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사랑의 강력한 힘을 체험한다. 서로를 변화시키는 사랑은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껴지며,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임이 분명하다.
꽤 오랜 시간 강의를 해오다 보니, 최근에는 10여 년 전 아이와 강의에 함께 하셨던 엄마를 또 다른 강의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어떤 센터에서는 몇 년에 걸쳐 교사를 위한 <봄날, 마음 소풍>, 아이를 위한 <한여름의 마음샤워>에 이어 이번에는 <마음 나들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강의를 요청해 주셨다. 해마다 이어지는 마음 프로그램을 통해 깊어지는 사랑의 강줄기가 심장을 흘러들어오며 서로를 잇는 보이지 않는 붉은 실들이 더 깊이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가족들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할 때면 나는 사랑이 일으키는 기적을 체험하곤 한다. 강의실에 들어설 때는 무겁고,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얼굴과 몸으로 날이 서 있는 말을 내뱉던 아이들과 어른들이 강의가 끝나고 나서는 가볍고, 밝아진 얼굴로 웃으며 서로를 안으며 따스한 축복의 말과 감사를 전하는 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서로를 사랑하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몰라서, 혹은 살아가며 생겨났던 상처들 때문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아프게 했던 이들이 함께 모여 사랑을 배우고, 익히는 순간은 참으로 눈물겹다.
몸과 마음 안에 박혔던 얼음가시 같은 상처가 녹아내리고, 몸과 마음의 흐름을 막고 있었던 응어리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사랑이 절로 차오른다. 마치 먹구름 뒤에도 항상 빛나고 있었던 햇살이 구름이 걷히면 드러나듯, 사랑의 빛과 따스함은 서로 안의 서운함도 고통도 아픔도 녹여낸다. 분리의 고통이 깊은 연결 속에서 회복되는 순간이다. 나는 그 빛이 터져 나오는 순간들을사랑한다.
삶은 사랑을 배우는 학교이다. 만약 학교에서 정규과목으로 사랑을 배우고, 연습한다면, 서로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나누고 소통하는 법을 익힐 수 있다면, 정말 이 세상에서 느껴지는 절망은 희망으로 변화할 수 있을 거라 느낀다.
사랑이 빠진 공부는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쓰이지만, 사랑을 바탕으로 한 공부는 자신과 타인 모두를 이롭게 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어쩌면 그 어떤 과목보다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사랑이 아닐까 한다. 꼭 사랑을 주제로 강의를 하지 않더라도, 친절하고 따뜻하게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고, 온전하게 비출 수 있다면 그 역시 사랑을 전하는 수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지구별을 떠나는 순간,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사랑했던 순간의 그 빛일 것이기에, 나는 더 최선을 다해 남은 생 동안 사랑을 배우고,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살아가고 싶다.
5월의 밝은 햇살이 초록이 가득한 세상에 따스히 내려앉은 날, 그 빛 안에서 지난날을 돌아보며 미소 짓는 오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