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 ‘철이 든다.’라는 표현이 있다. 자신의 나이에 맞게 계절의 특성대로 살아갈 때, ‘철이 든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편이고, 계절의 어원에도 그 의미가 담겨있다. 봄의 어원은 ‘보다’이다. 겨우내 어두운 땅속에 묻혀있던 씨앗이 단단한 껍질과 흙을 뚫고 나와 세상을 보게 되듯이 만물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고, 밝은 빛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는 때이다. 여름은 봄에 핀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가 ‘열음’하는 때이다. 가을은 열매를 갓(끊)을 계절이며 추수와 수확을 하는 시기이며, 겨울은 ‘머물다. 집에 있다.’는 뜻의 ‘겻다’라는 어원을 뿌리에 두고 있다.
청춘(靑春)이라는 한자어에 봄이 있듯, 젊음이 봄에, 중년은 가을에, 노년은 겨울에 비유되는 것도 그 계절과 우리의 삶이 그만큼 닮아있어서가 아닐까 한다. 내가 계절의 변화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미국의 교육자인 파커 파머의 마음 비추기 피정에 참여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마음비추기 피정
파커 파머는 ‘계절은 인생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현명한 비유이다.’라며, 무르익은 열매와 씨앗이 땅으로 떨어지는 가을을 ‘참자아의 씨앗’이 심어지는 때라고 보았다. 그리고 고독과 인내의 겨울을 거쳐 봄과 여름을 맞이하는 사계절을 삶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하며, 삶의 순환을 이해하며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를 체험하기 위해 피정은 각 계절마다 2박 3일씩, 자연 속에 있는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참여자들은 계절에 맞는 시와 글을 읽거나, 질문에 대한 답을 나누어 가며 계절의 의미를 탐구한다.
온몸과 마음으로 계절을 느끼다 보면, 보다 큰 흐름 안에서 내 삶의 속도와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랬기에 나는 그 이후에도 여러 기회를 통해 더 깊고, 생생하게 계절이 주는 의미를 느껴보고자 했다. 그러면서 봄에는 밝고 따뜻한 빛과 온기 속에서 생동하며 피어나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빛과 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열매에서 인내를, 가을에는 단풍과 잘 익은 열매들이 주는 풍요로움과 동시에 쌓여가는 낙엽이 주는 쓸쓸함을, 겨울에는 눈으로 덮인 세상 속에서 고요하고 차분하게 멈춰 서서 지난날을 반추하고, 다가오는 날들을 기다리는 기쁨을 배우게 되었다.
계절 속에서 나와 나의 삶을 바라볼수록 나는 전체 속에서의 부분인 나를, 보이지는 않지만 크고, 깊은 강줄기와 같은 큰 흐름 속에서의 나를 만나게 되었다. 그럴수록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라는 관용구나 ‘거스르지 않고 내맡기며 흐르는 삶’ 등의 표현이 머리가 아닌 몸과 마음으로 갈수록 더 깊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대자연과 순환 속에서는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체험을 했다. 내가 작아질수록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고통과 고민의 크기도 자연스럽게 덜어졌다.
자연 속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거나, 돌틈에서도 피어난 꽃들을 바라보다 보면, 엉켜있던 복잡한 생각이나 감정들이 스르르 풀려나갈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나를 무겁게 짓눌렀던 삶의 무게에서 비로소 해방되는 것만 같았다. 내가 살아있는 계절을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좁아져 있던 시야가 넓어지고, 마음이 열려 다른 존재들과 더 깊이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경험들을 했기에 나는 어떤 수업이나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라도 계절을 느껴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센터피스 사진
마음 비추기 피정에서는 센터피스에 계절에 맞는 꽃이나 사물 등을 놓고, 계절에 어울리는 스카프 등을 놓으며 계절을 초대한다는 표현을 썼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 힘든 도시 생활 속에서 깊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지 못해도, 계절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에, 나 역시 집에서나 어디서나 계절을 상기시킬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조건과 상황이 허락할 때에는 자연 속으로 함께 나가는 수업을 한다.
최근에는 봄비가 내리는 날, 가르치는 학생들과 봄비 소리를 듣고, 봄을 주제로 한 시를 읽었다. 그러고 나서 봄의 어원을 맞춰보게 한 뒤,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며 내리는 봄비에 머릿속 생각들과 몸마음의 찌꺼기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을 함께 상상해 보았다.
그 뒤에는 아이들과 운동장에 나가 오감을 열어, '보다'를 어원으로 한 '봄'을 자세하게 ‘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학교 급식실 앞 외진 곳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등나무꽃과 신비로운 색의 광대 노린재와 틈사이에 핀 애기똥풀 등을 발견하고선 비를 머금은 꽃망울처럼 싱그러운 표정을 지었다.
교실에 돌아와서는 봄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렸다. 검은색 사포 위에 색연필이나 파스텔로 그림을 그리니, 색감이 더 진하게 살아났다. 그림 그리기에 집중하던 아이들은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며 아우성이었다. 몰입해서 그림을 그리는 손들이 너무나 예뻐서 나는 그 모습을 부지런히 담았다.
이와 같은 야외 수업이 어려울 때는 앞서 이야기했던 센터피스, 그리고 계절을 주제로 한 음악이나 그림, 시, 책 등을 활용해서 계절의 특성을 느껴보고 글이나 그림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해 볼 수 있다.
이처럼 계절, 그리고 계절 속에서의 나를 느끼고 표현해 보는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것들이, 감탄하며 맡았던 봄날의 꽃향기가 아이들의 삶에서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 어느 계절에서든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고, 느끼는 눈과 마음이 때론 지치고, 고단한 이 삶을 위로해 주고, 힘을 준다는 것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봄날의 새싹 같은 아이들이 여러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봄을 맞이하면서 점점 더 깊어지고, 성숙해 갈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풍요롭게 차오른다.
선생先生님이란 한자 뜻 그대로 먼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내가 앞서 디딘 삶의 길 위에서 나는 거친 바위나 돌들은 치워두고, 꽃씨를 뿌려두고 싶다. 뒤따라오는 아이들의 앞길이 꽃향기로 가득하길 바라는 이 마음이 매일의 나를 피워내는 5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