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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아스쿨 May 24. 2024

자기 돌봄 수업

아이들과 길어 올린 치유의 언어들

나는 나 자신을 오랫동안 미워했다. 작은 실수나 잘못에도 스스로를 비난했다. 여러 잣대들로 스스로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데 익숙했다. 그렇게 나를 함부로 대했던 습관들이 쌓여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나는 지난 일에 대한 후회와 원망으로 하루 종일 나를 괴롭혔다. 나는 그 굴레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 방법을 몰랐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또 다른 길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섰던 나는 그 여정 중에 태국 치앙마이 근처 숲 속에 있는 오래된 사원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사원의 스님들과 참여자들은 대부분의 하루를 침묵 속에서 고요하게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며 보냈다. 하루 한 번은 비파사나 명상 안내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점검을 받는 시간이 있었다. 내게 명상을 알려준 분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조나단이라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조나단은 내 몸의 감각을 관찰하는 것에 이어서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해 보라고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내 마음 안에서 날이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지금 제대로 하는 게 맞아?”
“도대체 잘하는 게 뭐야?”
“조나단도 너를 한심하게 생각할 거야.”


등의 비난의 소리가 내 안에 메아리처럼 퍼지며 나는 다시 괴로운 상태에 빠졌다. 인터뷰 시간이 다가오며 나는 말 그대로 멘붕의 상태를 경험했다. 인터뷰 시간에 나는 조나단에게 내가 들었단 여러 목소리들에 대해 얘기하다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던 조나단은 푸른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마릴린 먼로 아니?"


라고 물어보았다.  


갑작스러운 질문을 듣고 나는


"당연히 알지."


라고 대답하며 눈물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마릴린 먼로가 만인의 연인이었다는 것도 알겠네? 그 인기가 아주 대단했지. 아마 수만, 수억 명의 사람들이 그녀를 동경하고 사랑했을 걸. 케네디 대통령도 그중 한 명이었고."


조나단이 말을 이어갔다.     


나 자신이 미워 죽겠다고 난리를 피우고 있는데,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던 대스타 얘기를 꺼내는 그가 얄미워서


'그래서 뭐 어쩌라고?'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할 찰나에 조나단은 또 질문을 했다.

    

"그런데 그녀가 어떻게 죽은 지는 아니?"
"아니"
"마릴린 먼로는 우울증과 마약 중독 등으로 시달리다 결국 자살을 했지. 타살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여하튼 그녀가 여러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던 건 사실이야.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찬탄을 하고, 사랑한다고 고백을 해도 소용이 없었던 거야. 그게 왜인 줄 아니?"
"......."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 전 세계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할지라도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어."
"......"
"만약 누군가가 너를 24시간 쫓아다니면서 감시하고, 평가하고, 판단하고, 그러면서 비난하고, 이래라저래라 한다면 어떻겠니?"
"숨이 막히지."
"생각만 해도 그렇지? 그런데 네 안에 그런 감시자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니?     


질문은 듣는데, 또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세상 그 누구도 그렇게 하루 종일 나를 못살게 굴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마치 감옥에 갇혀 고문을 받는 것 같았다. 조나단은 겉으로 보기에 많은 교육을 받고 잘 사는 것만 같은 많은 현대인들이 얼마나 끔찍할 정도로 자기 혐오증에 시달리고 있는지, 얼마나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는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진심으로 건네보라고 했다. 낯설고 어색했지만, 내 안의 깊은 곳에서 기쁨과 평안함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안하기를’이라고 되뇌며 나 자신에게 사랑을 전할수록 내 안의 어둠이 밝아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이 감각적으로도 느껴졌다. 실제로 메타명상이라고 불리는 이 명상은 나 자신에서부터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사람, 그리고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에게로,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에게로 점점 확대된다.

@픽사베이

그렇게 나와 타인을 위해 마음을 내어 기도할수록 나는 자기혐오와 자책이라는 감옥에서부터 벗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제야 평생 치열한 경쟁과 비교와 평가 속에서 굳어졌던 자책의 습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에도 나는 나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고, 지지하는 연습을 계속해오고 있다. 힘들거나 좌절스러운 상황 속에서 비난의 목소리 대신


“잘하고 있어. 수고했어. 애썼어.”


라는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나는 내가 진정으로 성장했다고 느꼈다. 그리고 내가 나를 돌보고,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을 안을 수 있는 품이 생겼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나는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자기 돌봄을 알고 실천하며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의 자기 돌봄 수업에서 아래와 같은 질문을 통해 자신 안의 자동반사적으로 나오는 내재적 언어를 찾아보게 한다.     


1.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부정적인 말은?
2. 내가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3.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아래와 같이  아이들 안에 박혀 있는 가시 같은 부정적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넌 왜 그따위니? 장애냐? 왜 살아? 넌 왜 살아? 왜 그것밖에 안되니? 나대지 마. 너는 평생 키가 안 클 거야. 난쟁아. 공부 못해서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야. 너보다 힘든 사람 많아. 할 줄 아는 게 없어? 가만히 있어. 이따위로 할래? 난 너 못 믿어. 꺼져.


외부에서 온 부정적 말은 아래의 답변처럼 자신에게 하는 내재적 언어가 되어버린다.

내가 왜 그랬지. 내가 그 짓거리만 안 했으면. 쓰레기 같은 놈. 미치겠다. 죽어. 이럴 거면 왜 해? 넌 안 돼할 줄 아는 게 뭐야. 필요 없어. 짜증 나.


그처럼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가시 같은 말들을 뽑아내고, 나를 꽃피게 하는 말, 내게 가장 필요한 말,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찾아보면 아이들 안에서 아래와 같은 반짝이는 치유의 언어들이 나온다.


이미 충분해. 너는 필요한 존재야.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누구나 그럴 수 있어. 걱정하지 마. 그럴 수 있어. 정말 예쁘다. 아름답다. 멋지다. 잘한다. 안아주기, 힘내. 네 덕분이야. 네가 최고야.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고마워. 미안해. 넌 할 수 있는 게 많아. 넌 언제나 빛나고 있어.     


이와 같은 치유의 언어를 찾고 나서는 아이들과 함께 예쁜 글씨와 그림을 더해 내게 주는 메시지카드를 만든다. 내 안에 그 말이 깊이 뿌리내리고 자리 잡아 꽃필 수 있도록 자주,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카드이다.

카드를 만든 뒤에는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를 떠올려 본다. 그 뒤에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를 대할 때처럼 조심스럽고 귀하게 나 자신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내게 가장 필요한 말,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나 자신에게 건넨다.


마지막으로는 아래와 같은 가사의 ‘너는 아름다워’ 등의 노래를 함께 들으며 느낀 점을 나눈다.

너에게는 향기가 있어.
너의 그 향기로 인하여
네가 가는 자리마다 향기롭게 할 거야
너에게는 빛이 있어.
너의 그 빛으로 인하여
네가 가는 자리마다 빛이 나게 할 거야
너는 아름다워.
너의 아름다움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거야.
너는 아름다워.
너의 아름다움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할 거야.     

- 강지선, '너는 아름다워' 가사


이 수업을 할 때에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 더 진지하게 집중한다. 어른들과 수업을 할 때에도 여기저기서 눈물이 터지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 깊은 곳 안에서는 상처와 아픔을 넘어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는 것만 같다. 나는 나 자신뿐 아니라 나와 인연이 된 모든 사람들이 자기 비난과 자기혐오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 돌봄과 자기 사랑의 길을 걷기를 기도하게 된다. 그 마음은 여름날의 녹음처럼 나날이 더 짙어져 간다. 그 마음이 숲처럼 우거져 더 많은 아픈 마음들을 품을 수 있길 기도하는 날들이다.


* 참고자료

<음악>

강지선 - “너는 아름다워.”

Red grammar - “See me 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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