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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아 May 31. 2024

시(詩)를 쓰는 과학 수업

사막에서 밤을 보낸 적이 있다. 해가 지며 하나, 둘 떠오르던 별들은 반구 모양으로 까만 하늘을 가득 채웠다. 말 그대로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무한한 우주 속에서의 나를 바라보니 내가 너무너무 작게만 느껴졌다. 덩달아 내가 가졌던 무거웠던 생각도, 걱정도, 고민도 한없이 가벼워져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내가 짊어지고 있었던 것들로부터의 해방감이었고, 자유였다. 그 뒤로 나는 삶이 무거워질 때마다 눈을 감고, 우주 안의 나를 느껴 보았다. 무한대라는 분모 위에 나를 두면, 나라는 존재는 한없이 작아지기도 하고, 무한대처럼 커지기도 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광활한 공간 속에서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기적 그 자체로 모든 것이 충분해졌다.

@픽사베이


이번에 5학년 아이들과의 과학 수업 시간 ‘태양계와 별’ 단원을 가르치며, 나는 아이들과 그런 나의 경험을 함께 공유해 보고자 했다.


https://m.youtube.com/watch?v=0fKBhvDjuy0&pp=ygUNcG93ZXJzIG9mIHRlbg%3D%3D


위의 영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로부터 우주까지 점점 확장해 나갔다가 몸 안의 세포와 원자까지 여행하듯 살펴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이다. 아이들은 영상을 통해 우주 속의 나, 그리고 내 몸 안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아이들은 이런 활동을 하고서


“내가 이렇게 작은 존재였다니!"


고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신비롭다.”, “우주가 너무 커서 두렵고, 무섭기도 하다.” “가면 갈수록 넓고, 많은 것들이 있다.”, “내 몸 안에 우주가 있다.”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지는 수업에서는 매시간 교과서에서 배워야 할 개념들을 배운 뒤에 우주에 관련된 시를 한 편씩 함께 읽었다. 아래의 다니카와 슌타로의 이십억 광년의 고독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을 음미해 보기도 하고.     

우주는 일그러져 있다/ 따라서 모두는 서로를 원한다/ 우주는 점점 팽창해 간다/ 따라서 모두는 불안하다/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 나는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 다니카와 슌타로, 이십억 광년의 고독 中

아래의 시는 시를 먼저 읽고 제목을 맞춰보기도 했다.

여기서 함께 줄넘기를 하자 여기서
여기서 함께 주먹밥을 먹자     
...
여기 몇 번이라도 돌아오자
여기서 뜨거운 차를 마시자   
여기서 함께 앉아 잠시동안 신선한 바람을 쐬자     

- 다니카와 슌타로, 지구로 떠나는 피크닉  中    

무한한 우주 속에서 지구라는 공간에 소풍을 왔다고 생각하니, 아이들은 우리가 하는 평범한 행동들도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단원 수업이 모두 끝난 뒤에는 백일장을 열어 ‘우주’를 주제로 한 시를 쓰기로 했다. 과학 시간에 배운 것들을 단순히 암기하고, 문제를 맞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주, 그리고 그 안의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열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는 통로이자 나의 마음을 잘 담을 수 있는 그릇이기에 적절한 표현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백일장 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시를 쓸 때도 무척이나 진지하게 몰입했다.

5학년, 11살 아이들이 쓴 시들은 실로 놀라웠다.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느끼는 아이들의 마음은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시를 쓰기 위해 많이 고민하고, 깊이 생각한 흔적들이 귀하게 다가왔다. 그런 아이들의 시들을 읽고, 또 읽으니 별빛처럼 반짝이는 마음에 내 눈과 마음이 씻겨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며 나 역시 나도 몇 주간 우주 속에서의 나와 내 삶을 다시금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이 우주의 모습과도 닮아있다고 느꼈다. 자신의 궤도를 따라, 각자의 속도대로 공전하는 행성처럼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에는 서로 가까워졌다 또 멀어지기도 한다. 어떤 인연은 태양처럼 빛과 힘을 주고, 어떤 인연은 위성처럼 거리를 두고선 주위를 맴돌고, 어떤 인연은 별똥별처럼 스쳐 지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지난 삶에서 만나왔던 이들의 얼굴과 이름들을 가만히 떠올리다 보니, 한때는 친구였던 이들도, 이제는 기억 속에서도 흐려진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이와는 사랑과 친절을 나누었지만, 어떤 이와는 갈등과 오해로 힘들기도 했다. 아쉬움도 있고, 후회도 남는 인연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으로 한 아이가 쓴 시처럼, 내 마음은 더 아름다워지고, 또한 풍요로워졌다.

그리고 또 다른 아이가 쓴 시처럼 내 옆에 있는 우주를 기억하고, 더 소중히 여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과학 수업 시간에 시를 써보았던 아이들도 그 경험을 통해 무한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살아있다는 신비를, 기적 같은 확률로 만나서 삶을 나누는 경이로움을 더 깊이, 오래 간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게도 무척 의미 있었던 수업을 정리하며 이 글을 쓰는 지금     


  저 우주 멀리 빛나는 별을 보는 건,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를 알아가는 것이다.

작은 생명체인 우리는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우주의 광활함을 견딜 수 있다.      


이라고 말했던 칼 세이건의 말이 둥근 보름달처럼 환히 내 가슴을 밝혀준다. 그 빛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잘 전해지기를 바란다.         


* 수업 참고 자료     


- 책 : <코스모스>. 칼세이건, 사이언스북스

- 음악 : 김희동 내 마음에도 별이 내려(https://www.youtube.com/@HDforest22)

- 시 : ‘사랑하는 별 하나’ - 이성선

       ‘내 안의 우주’ – 안재동

       ‘별’ - 정여민

       ‘이십억 광년의 고독’/‘지구로 떠나는 피크닉’ -다니카와 슌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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