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내 삶에서 쉽게 해결되지 않는 숙제와도 같았다. 우울의 늪에 빠질 때면 일상생활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 몇 년 전 어느 날엔 우울함에서 벗어나고자 힘을 내어 심리상담 워크숍에 참여했다. 워크숍을 시작하며 진행하시는 선생님께서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한 문장에 넣어 자신을 소개해 보라고 하셨다.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먼저 얘기하고, 강점은 뒤에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내 안에서 나온 문장은
"나는 종종 우울하지만, 따뜻함을 나누는 사람이에요."
이었다.
나는 우울함이라는 감정에 빠질 때도 있지만, 내가 우울이라는 감정으로 많이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만큼 다른 사람을 잘 공감하며 따스한 마음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나는 내가 우울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며, 내게서 도려냈으면 했던 우울을 통해 다른 이들의 마음을 더 깊이 공감하고, 지친 이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 경험은 우울이라는 감정에 빠진 나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더 크고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열어주었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이 약함과 강함, 약점과 재능, 어둠과 빛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안다. 이제 나는 완전해진다는 것이 그중 어느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포용하는 것임을 안다.
-파커 J. 파머
라는 말처럼 나는 내 안의 약점과 강점 모두를 판단 없이 받아들이고, 끌어안고 통합하며 성장해 왔다.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삽화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라는 그림책으로 유명한 캐나다의 시인 조던 스콧은 말을 더듬는 자신의 약점을 넘어 재능과 강점을 살린 작가이기도 하다. 나는 작년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서 조던 스콧의 강연을 듣게 되었는데, 작가님이 전해주신 일화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림책에 나왔듯이 자신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말더듬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너는 강물처럼 말한단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이는 그의 삶을 바꾸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대학원에서 문학을 배울 때 교수님께서 매주 시를 쓰고 읽는 과제를 내어주셔서, 말을 더듬으며 읽는 것이 부끄러워 일부러 시를 깜빡한 척을 했던 이야기도 해주셨다. 어느 날엔 교수님께서 미리 챙겨두신 시를 읽게 하셨는데 엄청나게 말을 더듬으며 시 읽기를 마친 자신에게 교수님은 자신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That was beautiful!"
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고 했다. 말을 더듬는 것을 아름답다고 들은 것은 처음이었고, 그 순간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다는 말에 눈이 시큰해졌다. 이처럼 자신이 숨기고 싶은 약점을 그 사람의 고유성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이야말로, 저마다의 재능을 꽃피우게 하는 양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경험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어서 나는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라는 그림책을 찬찬이 읽어주었다. 그림책에서는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었던 아이가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수업 시간에 책을 읽었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가 담겨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말을 더듬으며 발표를 해서 부끄럽고 힘들었던 날이면, 자신을 강가로 데려가서
"너는 강물처럼 말한단다."
라는 아버지가 계셨기에, 그 아이는 자신이 강물처럼 말한다는 것을 새기며, 시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그림책을 읽어주는데, 아이들이 이야기와 그림에 몰입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책장을 덮고 둘러보니 몇몇 아이들의 눈시울이 빨개져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시인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를 돌아보자고 했다. 그리고선 우리는 누구나 약점과 강점을 가진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그 뒤에 나는 아이들에게 고유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우리가 각자 다른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가 완벽하지 않기에, 마치 퍼즐을 맞추듯, 서로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느껴보라고 했다. 그것을 진정으로 알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약점을 놀리고, 비웃는 대신 서로의 연약함에 손을 내밀 수 있게 된다는 얘기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담긴 한 문장, 혹은 그것을 통합해서 나온 문장을 제목으로 그림을 더해 자신을 나타내는 책표지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완성된 아이들의 작품은 정말인지 놀라웠다. 무엇보다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깊이 성찰하고 담아낸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아이들 각자가 지닌 고유성을 아름다움으로 잘 비춰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돌 틈에서 피어나는 꽃들을 보고 절로 터져 나왔던 감탄을 기억하며, 나는 아이들이 자신의 약점을 끌어안고 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또 응원하며 남은 생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