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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아 May 17. 2024

울고 또 웃는 스승의 날

나는 솔로 20기는 모범생 특집으로 불릴 만큼, 출연자들의 스펙과 직업으로 눈길을 끈다. 그 중에 초등교사인 순자가 있었는데, 다른 화려한 직업들에 비해 교사는 너무 평범해 보인다는 의견이 있었다. 나는 순자가 같은 대학 후배이기도 해서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순자가 교사라는 직업을 소개할 때  '한 사람의 인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업' 이라고 했던 말에 공감이 갔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평범해보일지 몰라도, 누군가의 삶에 깊이 영향을 직업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솔로' 화면 캡처

내가 성장 과정에서 만나왔던 선생님들의 말씀과 수업은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었고, 교사가 된 후에는 아이들이 나의 말이나 눈빛에 달라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교사 역시 아이들의 말이나 행동에 영향을 받는다.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아이들이 전해주는 색종이 작품이나 편지 등은 교사에게 큰 힘이 되기도 한다. 나도 학창 시절 스승의 날에 준비한 이벤트에 감동하시던 선생님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스승의 날이 없는 것보다 못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YTN 기사 뉴스 캡처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에 관한 김영란법이 도입된 이후에는 모든 것이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졌다. 스승의 날 케이크 파티는 가능하지만, 교사가 케이크를 한 입이라도 먹으면 불법이라는 기사를 보고 선생님들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물론 예전처럼 촌지나 상품권 등의 금품은 당연히 근절되어야 마땅하고, 그 외의 선물 등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역효과도 있는 듯하다. 실제로 요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스승의 은혜라는 노래도 스승의 날이 어떤 날인지도 잘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오히려 올해처럼 휴일인 게 더 낫다는 선생님들의 말씀에 나 역시 그러려니 했다.

더군다나 나는 담임이 아닌 교과를 가르치는 교사라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스승의 날 수업을 하러 갔는데, 교실에 불이 꺼져있었다. 체육 수업을 갔다가 아직 안 왔나 싶었는데, 문을 열자 스승의 은혜 반주가 나오며 반아이들이 입을 모아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칠판의 감사 메시지와 풍선과 아이들이 전해준 편지 더미에 나는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솟았다.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새삼 다시 느끼며, ‘나 역시 어떤 위로와 응원이 필요했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랑을 주고, 또 받는 기쁨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수업 후에는 아이들이 써 준 편지를 읽는데, 또 한 번 뭉클한 감격이 느껴지기도 하고, “하하하” 웃음이 나기도 했다. 아이들의 글 속에는 순수하고도,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에게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는 살아왔던 여정들이 아이들에게 전해진다는 것을 자주 느껴왔다. 내가 보고, 듣고, 느꼈던 여러 세상의 모습들과 내가 만나왔던 사람들과 경험들은 나의 수업과 말과 태도 속에 녹아있는 것이다. 내가 여러 세상 속에서 여러 역할들을 체험해보며 느꼈던 것들은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13년 전 초등교사를 그만두며, 나는 직업은 우리가 입는 옷이라는 생각을 했다.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옷을 벗는다’라는 관용구를 쓰듯 입고 벗을 수 있는 역할일 뿐이다. 자신에게 편안하고. 어울리는 옷이 있듯이, 아무리 비싸고 좋은 옷이라도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그저 불편할 옷이 될 뿐이다. 직장을 그만둔 이후 나는 한동안은 글과 소설만 썼다. 그 뒤에는 여행자로 살았으며, 다큐멘터리 촬영에도 참여했고, 호스피스 봉사자로 지냈다가 백혈병과 난치병 아이들을 가르쳤고, 대학원에서 상담 공부를 하며 여러 상담 프로그램과 강의 등을 기획하고 진행해 왔으며, 사회적기업가 지원사업에 선발되어 법인으로 교육센터의 대표가 되어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여러 경험들을 통해 나는 내가 누구와 무엇을 할 때 가장 나다워지는지, 가장 행복한지를 직접 경험해볼 수 있었다. 두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는 자유롭게 혼자 다니던 때와는 삶의 기준과 상황이 달라졌다. 올해는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보다 안정적으로 아이를 돌보기 위해 근처 초등학교에 1년간 기간제 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13년 만에 돌아온 초등학교에서 매일 아이들을 가르치며, 나는 지난날의 경험들이 하나도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한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교사가 책이 되고, 다른 세상을 이어주고 연결해 주는 문이 되고, 통로가 되는 것을 느낀다.


내가 오랜만에 돌아온 학교 현장에서 가장 감동하게 되는 것은 교육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신 선생님들의 모습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해 수업 자료들을 찾고, 여러 수업 준비를 마다하지 않으시는 선생님, 난독증인 학생을 위해서 따로 자료를 만드시는 선생님, 아이들에게 늘 최선의 것들을 주고자 애쓰시는 선생님들을 보며, 나는 절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든다.


그리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수업을 듣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설렌다. 갈수록 절망적인 사건, 사고들이 넘쳐나는 어두운 세상 속에서도 별처럼 빛을 지켜가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통해 나는 마지막 희망을 목격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 선생님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나는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들께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 쿠키를 선물했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한 번 교사는 평생 교사’라는 말이 있다. 학교를 떠나거나 가르치는 일을 그만하게 된다 해도 내가 가르쳤던 제자에게는 평생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조력하는 기쁨을 느낀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도 그런 일을 이어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앞으로 계속 학교에 남아있을지, 다른 곳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어디서든 아이들 곁에서 울고, 또 웃는 일을 계속 하게 될 것만 같다. 저출산 시대와 기술 등의 발달로 잉여 교사나 AI 교사 등의 말이 나오는 시대에 미래의 세상과 교육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쪼록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의미 있고, 보람된 일로 남기를 바라며, 내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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