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아스쿨 Jul 31. 2024

“선생님, 우리 아이가 ADHD라서요.”

  “선생님, 우리 아이가 ADHD라서요.”

 

어느 주말, 가족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한 어머님께서 내게 오셔서 말씀을 꺼내셨다. 아이가 프로그램에 제대로 집중을 못하고 방해가 될까 봐 걱정이 되신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아이를 관찰했다. 어머니를 따라온 초등학교 2학년 아이는 강의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느라 바빴다. 프로그램 시작 시간이 되어 둥글게 모여 앉아 자기소개를 하는데, 아이는 여전히 자리에 앉지 않고 움직였다.


때때로 소리도 지르고, 다른 사람들 옆에 가서 장난을 치며 주의를 끌려했다. 엄마와 함께 하는 활동은 아예 하지 않으려고 도망갔다. 나는 그런 아이의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얼마 뒤, 엄마와 떨어져서 아이들끼리 모여서 하는 활동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아이는 새로운 강의실에 가서도 여전히 산만하게 돌아다녔지만, 새로운 활동에 호기심을 보이는 것이 느껴졌다.


활동의 주제는 ‘가족과 가장 행복했던 순간, 가장 힘들었던 순간 그리기’였다. 그리기에 앞서 몸을 태아처럼 웅크리고 누워서 천을 덮고 있다가 나오는 활동을 통해,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라온 과정을 몸으로 표현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를 통해 자신의 성장 과정을 돌아보고 여러 기억들을 떠올려볼 수 있는 활동이었다. 혼자 강의실 구석에 서 있던 아이는 어느새 나의 가까이에 와서 누워있었다. 나는 아이의 작은 몸 위에 가만히 천을 덮어주고선, 불을 끄고 안내 멘트를 하였다.


 ‘지금은 엄마 뱃속이에요.
몸을 최대한 작게 웅크려서
씨앗처럼 작은 아기 때로 돌아가 봅시다.
엄마 뱃속은 어떤 느낌인가요?
그 안에서 나는 어떤 마음이었나요?’


천 안에서 아이는 몇 번 꿈틀거리며 자리를 잡더니, 이내 고요하게 숨을 쉬었다. 그리고서 엄마 뱃속에서 나오는 것을 상상하며 천을 뚫고 나왔고, 배밀이와 뒤집기, 걸음마 등 아기 때부터 자라오며 거쳤던 성장 과정을 몸으로 다시금 체험해 보았다. 마치 씨앗이 껍질을 깨고 나와 뿌리를 내리고 줄기와 잎을 뻗는 것처럼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거쳤던 여러 단계들을 돌아본 것이다. 그 후에는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며 마치 영화처럼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여러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10여 명의 아이들은 모두 꽤 진지하게 집중을 해서 활동을 이어갔다. 기억을 돌아본 아이들은 도화지를 한 장씩 받아 접어 왼쪽에는 가족들과 가장 행복했던 순간, 오른쪽에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의 장면을 그려 보았다. ADHD 진단을 받았다는 아이는 종이 왼쪽에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손을 잡고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고, 오른쪽에는 자신, 그리고 자신보다 작은 아이들 두 명을 더 그리고서는 검은색 크레파스로 그 위로 선들을 막 그었다.


모든 활동을 다 마치고 아이들은 함께 참여한 가족들과 다시 만나 그린 그림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이 활동을 하는 동안 부모님들도 몸과 마음을 편안히 이완한 뒤, 같은 주제로 그림을 그려두었다. 부모님과 아이들은 서로가 그린 그림들을 먼저 감상한 뒤에 가족들끼리 모여 그림에 대한 이야기와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ADHD 증상을 보인다는 아이는 엄마의 눈을 보며 마주 앉아서는


“내가 가장 행복했을 때는 엄마, 아빠랑 같이 손잡고 마트에 가거나 놀러 다녔을 때야. 그런데 동생 둘이 태어나면서 엄마, 아빠는 동생들만 봐주고 챙겨줬어. 동생들은 자꾸 내 장난감도 만지고 나 힘들게 하는데 나만 혼나서 너무 속상해. 그리고 엄마, 아빠가 나를 안 봐주니까 내가 계속 움직이는 거야. 안 그러면 엄마, 아빠가 나 안 보니까. 나 좀 봐달라고.”


가슴속에 있었던 몇 문장의 이야기를 꺼내는 동안 아이는 몇 번이나 말을 멈추고, 온몸을 들썩거리며 눈물을 쏟아 냈다. 대화 전에 내가 당부를 드렸듯이 아이의 말을 끊지 않고 가만히 경청을 하시던 처음에는 어머님은 당황하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아이와 함께 눈물을 쏟아 내셨다. 그러고 나서 아이의 말이 끝나 어머님은


“엄마가 갑자기 동생들을 낳아서 몸도 아프고 너무 힘들었어. 동생들 본다고 너무 바빠서 우리 OO 이를 제대로 볼 시간이 없었네. 동생들에 비하니 네가 다 큰 것만 같아서 너도 사랑이 필요한 아기인 줄 몰랐네. 엄마가 미안해. 지금부터라도 우리 OO이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사랑해 줄게.”


하며 아이를 꼭 안아주셨다.

@픽사베이


아이는 아기 코알라처럼 엄마 품에 깊이 안겨서 들썩이던 몸과 숨을 편안하게 골랐다. 그리고선 이내 말개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다른 가족들의 대화도 모두 마무리가 되었을 때 나는 가족들에게 둥글게 모여 앉아 마지막 소감 나누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던 OO 이는 놀랍게도 자리에 가만히 제자리에 앉아 20여 명의 사람들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그것도 웃기도 하고, 박수도 치며 적절한 반응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 변화에 어머니를 비롯한 참여자 모두가 놀라서 마지막에 일어나서 모두에게 박수도 받았다. 아이는 마치 태풍이 지나간 하늘 위에 뜬 태양처럼 맑고 밝은 얼굴로 해사하게 웃었다. 불과 몇 시간 전의 위축되고 산만한 아이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아이의 마음속에는 언제, 어떻게 표현해야 할 줄 몰라 쌓여있던 외로움과 불만과 불안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알아주지 못해서 여러 다른 증상으로 드러난 마음을 제대로 보아주고, 충분히 느껴주고 공감해 주면 그 마음 풀려날 수 있다. 드러난 문제 행동만 보고, 그 행동만 제약한다면 그것은 뿌리를 자르지 않은 잡초처럼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결국 아이들의 말과 행동의 원인이 되는 마음의 뿌리를 제대로 보고 공감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것에 서툴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문제 행동은 진짜 자신의 마음을 봐달라고 아이들이 보내는 S.O.S 신호이다. 그 신호를 잘 알아차리고, 아이들의 마음을 안아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자 과제일 것이다.

이전 18화 마음에 꽃을 피우는 대화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