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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아스쿨 Aug 21. 2022

사랑은 아무나 하나

내게 있어 '사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분은 '마더 테러사'였다. 어릴 때 읽은 어떤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던 위인들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평생 살아가셨던 분의 삶이 주는 울림이 커서였다. 마더 테레사는 돌아가셨지만 조병준 작가님의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라는 책을 통해, 나는 인도 캘커타라는 곳에 마더 테레사 하우스가 있으며 전 세계에서 봉사자들이 모여 마더 테레사의 사랑을 이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앞서 배웠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고 싶은 생각에 그곳으로 향했다. 마음만으로는 온 세상 사람들을 품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는 아이들이 모여있는 쉬슈야반, 임종을 앞둔 분들이 모여있는 칼리캇 등 연령과 증상에 따라 건물과 사람들이 나누어져 있었다. 내가 배정된 곳은 신체적, 정신적 질병을 앓고 있는 여성분들이 모여있는 프렘단이라는 곳이었다. 그곳에 도착해서 처음 맡겨진 일은 어마어마한 양의 빨래였다. 이불과 옷가지들이 끝도 없이 나와 봉사자들은 수돗가에 일렬로 서서 거대한 빨랫감을 나눠서 세제에 담그고, 헹구고, 짜고, 말리고 했다. 한 시간 가량 빨래를 쥐어짜던 손이 다 벗겨져 결국 엄지 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목과 어깨와 팔이 빳빳하게 굳어왔다. 얼른 안에 들어가 사람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빨래를 다 하고, 들어간 건물 안의 모습은 거의 충격 그 자체였다. 거동도 제대로 못하는 분들이 의자에 앉아 알 수 없는 신음소리 같은 것을 내고 있었고, 화상 때문인지 눈코입이 형태도 알 수 없이 빨갛게 일그러져 있는 환자와 머릿속이 훤히 다 보이는 듯한 환자도 있었다. 이처럼 상처들이 날 것으로 드러나 있는 곳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던 나는 당황스러웠다.

 

  ‘병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진 않을까?’

  ‘그냥 이대로 가버릴까?’

여러 걱정과 두려움에 많은 생각들로 나서던 발걸음이 느려지고, 뒷걸음질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한 분이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아 가까이 가보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손짓 발짓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자 했던 그녀는 결국 앉은 자세로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오 마이 갓!’     

그 앞에서 나는 너무도 무기력해졌다. 나는 건강하고 젊으니까 아픈 이들에게 무엇이든지 다 해 줄 수 있고, 사랑을 베풀 수 있을 거라 여겼던 오만이 부끄러워졌다. 빳빳하고 꼿꼿하게 세워져 있던 목과 몸과 마음이 저절로 꺾이고 구부러지고 숙여졌다.

      

나는 도망치듯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몸은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분들이 계신 곳이라고 했다. 내가 올라가자마자 어떤 한 여자분이 걸어오더니 대뜸 자신이 끼고 있던 팔찌를 내게 건네주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어정쩡하게 서 있는 데 나보다 키가 크신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왔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한쪽 팔을 잡고 나를 침대에 데리고 가더니, 나보고 누워보라고 시늉을 했다. 긴장하고 놀랐던 나의 마음을 느꼈던 것이었는지, 그녀는 엉겁결에 침대에 누운 나의 팔과 등을 가만히 쓸어주고 두드려 주었다. 다정하고 따뜻한 손길에 쿵쾅거리던 마음이 진정되면서 참았던 눈물이 왈칵 솟아올랐다. 자원봉사자로 가 있는 내가 오히려 그들에게 사랑을, 도움을 받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흐르고 있는 마더 테레사의 사랑이 내게 흘러 들어옴을 느낄 수 있었다. 문득 책에서 읽었던 마더 테레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사랑이 참되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랑은 상처를 받아야 하며 자기 자신을 비워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보면 그들을 도와줄 손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면 돼요. 서로 손잡고 피부를 맞대어 접촉함으로써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그걸 들을 수 있는 귀를 갖도록 하세요.'


그곳에 있는 분들은 내게 나의 의도와 욕심, 오만과 위선이 비워진 자리에서만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알려주었다. 그 뒤로 나는 머리가 아닌 몸과 가슴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언어는 거의 통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손을 잡아보고, 몸짓과 눈빛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듣고자 했다. 그러면서 화상으로 온 얼굴이 일그러져서 귀도 거의 사라진 여자분이 너무도 생생하게 나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다는 것, 눈이 안 보이시는 분이 손으로 내 얼굴과 몸을 더듬어 나를 기억하며 반가워한다는 것에 놀라고 감사하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게 되었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반기며,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해줄 수 있게 되었다. 그를 통해 나는 사랑은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님을, 서로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위하는 연결된 가슴 사이의 흐름 안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안에서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았고, 오직 모두를 품는 바다와 같은 큰 사랑만 느껴졌다.



작고 소박한 마더 테레사 하우스 선교회의 작은 건물에서는 자원봉사를 시작하기 전 매일 새벽에 미사가 있었고, 봉사 후에는 저녁 기도 시간이 있었다. 경건한 의식과 기도 속에서 불안전한 사람이 사랑 그 자체인 완전한 존재를 닮아가고자 하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세상의 어두운 곳에 있는 병들고 나약한 이들을 섬기시며, 몸을 낮추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던 예수님의 삶과

  '성체를 사랑하는 것과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의 같은 사랑입니다.'

라고 하셨던 마더 테레사의 말씀이 매일 더 깊은 감동으로 와닿았다.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내가 배치받았던 ‘프렘단’이라는 곳의 뜻이 ‘사랑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수녀님들과 다른 봉사자들이 불러주는

  ‘가슴으로부터 감사합니다. 가슴으로부터 사랑합니다. 가슴으로부터 보고 싶을 거예요’

라는 이별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내 가슴 안에 사랑의 선물이 가득 차오름이 느껴졌다.


그곳을 떠나면서 나는 문득, '사랑은 아무나 하나. 그 누가 쉽다고 했나.'라는 어느 노래의 가사가 떠올랐다. 세상에서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흔하고 쉽게 쓰였지만, 진정한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쉬운 일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서였다. 하지만 이처럼 어렵고 힘든 것이 사랑이기에, 우리는 삶 속에서 더욱 사랑을 진지하게 탐구하며, 그 속에서 진정한 나와 너를 찾아나가야 함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사랑이야말로 이 지구별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렇게 사랑을 배우고 체험하면서, 내 안에 자리 잡은 많은 가짜 사랑을 부수고, 여러 욕망이나 이기심들을 다듬으며 사랑 그 자체가 되어가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람’이라는 단어의 마지막 자음인 ‘ㅁ’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다듬어, 'o'를 만들어낼 때 ‘사랑’이라는 단어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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