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있었다. 분명히 나를 사랑한다고 했는데,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은 나를 아프게 했다. 반면에 "사랑해"라는 말이 "살아야 해"라는 말처럼 들리던 때가 있었다. 사랑은 분명 나를 살아가게 하는 중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랑의 수많은 스펙트럼을 경험할수록, 나는 사랑이 더 어려워졌다.
사랑이라고 붙잡았던 것들이 고통을 줄 때면 나는 뜨겁게 달궈진 공을 손에 들지도, 그렇다고 내려놓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러고 나면 마음 한 구석이 벌겋게 데고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나 역시 분명 가족이나 연인이나 친구를 좋아하고, 사랑해서 했던 말과 행동에 의도치 않게 상대가 힘들어하거나 아파할 때가 있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기에, 사랑이 아닌 것도 알 수 없었다.
"사랑이 도대체 뭐길래, 나를 이렇게 혼란스럽게 하는 것일까?"
"우리 안에는 네 가지의 보석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중 첫 번째가 사랑입니다."
인도 북부 히말라야 자락의 작은 명상센터에서 강사인 글렌의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랑'이라는 얘기에 귀가 번쩍 뜨여, 질의응답 시간에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사랑이 무엇인가요?"
"사랑이란 상대가 진실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에서 나온 말과 행동이지요. 우리는 보통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타인에게 집착하거나 타인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데로 바꾸려 하는 데 그것에서 많은 문제와 고통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가 없는 상태에서 남을 위하는 것은 오히려 남과 나를 파괴하는 길이 됩니다. 우선 자신이 자신을 사랑과 자비로 자신을 돌보아 스스로 행복한 이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채웠던 욕망과 이기심, 사랑이라는 명분 아래 행해졌던 폭력들은 사랑이 아니었던 것이다.
글렌은 우리 안에 '사랑, 자비, 기쁨, 평정심'이라는 고귀한 마음이 있다고 하며, 그 설명을 이어갔다. 자비는 다른 사람이 진실로 고통과 고통의 뿌리에서 자유롭길 바라는 마음과 말과 행동, 기쁨은 평소에 내가 알고 있던 개념에서 확장되어 다른 사람의 행복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여기며 함께 기뻐하는 마음, 평정심은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에 더해 모든 존재들을 차별 없이 평정하게 대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또한 이 네 가지 마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게 계발할 수 있다고 했다.
다음 날에는 진정한 사랑에 필요하다는 지혜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다. 글렌은 한쪽 팔과 손을 들더니 질문을 던졌다.
"우리의 팔과 손의 경계를 선으로 그어 정확히 나눌 수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확한 구분선을 긋기가 어려웠다. 다들 난감하고도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팔과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신호를 보내자, 글렌은 팔과 손에서 확장하여 우리의 몸, 그리고 나와 주변, 나와 상대를 정확하게 구분 지을 수 있는지 둘러보라고 했다. 살펴볼수록 어떤 것이든 선을 긋거나 가위로 오리듯 경계를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가 분리될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관찰은 내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문이 되었다.
이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나라는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은 상호의존적으로 더불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는 이를 통해 마치 유기체나 공동체라는 단어에서처럼 한 몸처럼 연결된 세상을 생생하게 느끼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유명한 성경 구절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 고린도전서 12장 26절'
라는 성경 말씀이 떠오르기도 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위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과 전체를 위한 것임이 더 선명하게 와닿았다.
나와 너를 구분하고 관련이 없는 것처럼 여기며 생기는 끝없는 비교와 경쟁과 욕망이 일상에서의 갈등과 분쟁, 나라 간의 전쟁, 기후 위기와 환경오염 등 여러 고통을 만들어낸다면, 나와 너, 우리 모두가 깊은 연결 안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눈과 마음은 서로를 돌보고, 살피고, 배려하는 사랑으로 이끌어주는 힘이 될 수 있음이 느껴졌다.
명상센터에서는 우리 안의 귀한 마음들을 기르는 데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며, 수업이나 명상을 마칠 때마다 자기 자신과 서로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모아 기도를 했다. 프로그램이 끝나는 마지막 전날 밤에는 강사 분들과 학생들, 그리고 자원 봉사자 분들이 함께 모였다. 우리는 저마다 하나씩 초를 밝히며 우리 안의 사랑과 자비, 기쁨과 평정심이 빛처럼 빛나기를 기도한 뒤, 각자가 나누고 싶은 것들을 돌아가며 나누었다.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 “Don't worry. Be happy."라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 힌두 전통 음악을 부르는 사람, 유대인의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를 하는 사람, 밥말린의 노래 가사를 읊는 사람들도 있었다. 각자의 문화나 관심에 따라 내용은 달랐지만, 자신과 주변과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들의 행복과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은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동심원처럼 점점 더 커짐을 체험할 수 있었다. 아무리 이기적으로 보이고, 풀리지 힘든 갈등으로 대립되어 있어도 사실 우리 모두가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고싶다는 점에서 같은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나, 그리고 나와 둘이 아닌 모든 존재가 진실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은 서로의 가슴을 이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