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아스쿨 Aug 19. 2022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그와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장소는, 우연찮게, 처음 우리가 만나서 밥을 먹었던 신촌역 앞의 식당 앞이었다. 식당이 있었던 건물은 새롭게 신축 공사를 하면서 완전히 허물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모든 것은 변하는 거야.”     


사랑 대신 냉소가 담겨있는 그 말이 내 마음에 유리파편처럼 아프게 박히는 듯했다. 우리 사랑 변치 않고, 영원하게 만들자던 약속은 물거품처럼 허무하게 사라졌다. 이별은 항상 힘들었지만, 오랜 기간 동안 누구보다 친밀하고 가깝던 존재와의 이별은 마치 생살을 베어내는 것처럼 아팠다. 매몰차게 돌아선 그의 마지막 뒷모습을 보며, 나는 영화 <봄날은 간다>의 상우처럼 따지듯 묻고 싶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과연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요?”     


히말라야 자락의 투시타 명상센터에서 호주 출신의 강사인 글렌은 참여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글렌은 차분한 미소를 입가에 띠우며 우리는 대부분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 자체를 고통으로 여긴다고 했다. 우리가 태어난 순간부터 나이가 들고, 병이 들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 모두 변화의 연속인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할수록 고통이 커진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대상이 주는 좋은 느낌이나 감정이나 생각, 행동들이 영원하고 한결같길 바란다면, 그것이 조금만 변한다 할지라도 고통이 생긴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통의 근원이 그 대상이나 변화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기를 기대하는 내 마음과 기대, 집착에 있다는 자각도 함께 일어났다.


글렌은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변한다.’라는 것에 대해서 짧은 명상을 해보자고 했다. 낮게 울리는 글렌의 목소리를 따라 나의 삶을 돌아보니, 작디작은 아이에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의 내 삶의 수많은 변화들이 영화처럼 흘러 지나갔다. 나를 둘러싼 자연과 계절과 시간의 변화도 함께 느껴졌다.

 

명상을 한 뒤에는 소그룹을 만들어 ‘무상(無常)’에 대한 토론을 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하던 중, 내 또래의 미국인 한 명이 나에게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영화를 감명 깊게 봤고, 그 영화를 보면서 변화와 무상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문득, 영화 속에서 봤던 4계절의 풍경이 떠오르며, 봄, 여름, 가을이 지나고 나서 또다시 오는 봄의 흐름과 순환이 느껴지며 영화의 제목이 새롭게 와닿았다.

 



그렇게 토론을 마치고 쉬는 시간, 명상센터와 이어져있는 숲길을 홀로 걸으면서, 변화하는 계절과 사랑이 많은 부분에 있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드는, 혹은 어떤 부분이 통하는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나뭇잎을 간질거리는 봄바람처럼 설렌다. 싹을 막 트는 새싹이나 잎눈처럼 궁금한 것도 많고, 함께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은 아지랑이처럼 뿌옇게 내 눈과 마음을 가리기도 해서, 아직은 서로의 좋은 점, 혹은 보고 싶은 점만 보게 된다.


그런 시간이 지난 뒤에 사랑은 여름처럼 뜨거워진다. 따갑도록 강한 여름 햇살을 견뎌내며 익어가는 과일들처럼 이 과정을 겪으면서 서로의 사랑은 더 깊어진다. 그리고 밝은 태양 아래의 세상처럼 그동안 보지 못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기대나 스스로 만들어놓은 상이 클수록 고통과 오해가 커지며 장마나 소나기처럼 관계에서 비가 쏟아져 내리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잘 겪어낸다면, 사랑은 잘 여문 벼처럼 단단해지고, 잘 익은 열매처럼 달고 맛있어진다. 하지만 그 과정이 너무 힘들다면, 우리는 나뭇잎을 떨구는 나무처럼 서로 '이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실 아무리 서로 사랑하며, 모든 과정을 함께 이겨낸다고 해도 우리는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이별'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겨울'이 오면, 우리는 한 겨울의 나무들처럼 뿌리를 더 깊이 내리며 고요하게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다시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든, 새로운 사람을 만나든 우리는 좀 더 성숙하고 달라진 모습으로 새로운 봄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지금 나는 어느 계절에 서 있는지 나 자신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이별을 경험하고 홀로 서 있는 겨울나무 같은 나 자신이 느껴졌다. 다른 이들에게 의존이나 집착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럴 때일수록 나 자신을 더 사랑하며 중심을 잘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발바닥에 힘을 주고 주변을 나무들과 함께 잠시 서 있다가 발걸음을 옮기는데, 낙엽들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나는 낙엽 하나를 주워 들었다. 한 때는 푸르른 잎이었을 낙엽이 부스러지며 다시 흙이 되고, 그 흙의 양분이 되어 나무가 되고, 다시 그 나뭇가지에서 물이 오른 새순으로 돋아남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뒹구는 작은 낙엽 안에 우주가 있고, 우리네 삶이 있고, 사랑과 이별이 있고, 모든 변화가 담겨있었다. 문득, 모든 것이 끝인 듯하고 다시는 그 무엇도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은 좌절과 절망의 순간 후에도 어김없이 지속되는 삶의 변화와 흐름이 고통이 아닌 희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흐르면 미운 사람도 사라질 것이요 좋아하는 사람도 사라질 것입니다. 나도 또한 사라질 것이니 이와 같이 모든 것이 없어질 것입니다. 꿈을 꾼 것이나 다름없이 내가 좋아했고, 쓰던 물건 어떤 것들도 기억으로만 남을 진 데 지나간 모든 것은 다시 볼 수 없게 됩니다. - 샨티 데바     


얼마 전 들었던 달라이라마의 강의에서 인용되었던 <입보리행론>의 구절이 떠오르며, 커다란 흐름 안에서의 꿈결 같은 삶이 느껴졌다. 밉고 원망스러웠던 사람들의 이름과 나의 미성숙함과 무지로 사랑이 아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천천히,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기면서 나는 그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을 전했다. 내 안에 가득 차 있었던 돌멩이들이 하나씩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의 빗장이 열린다는 표현처럼 오랜 시간 동안 고여 있었던 물이 다시 흐르는 듯했다. 강물 위의 나뭇잎처럼 몸과 마음을 내맡기며 흐르는 유연한 느낌에 몸과 마음이 가볍고 홀가분했다.


그렇게 흐르듯 다시 명상센터로 돌아가니 마침 멀리 산 너머로 해가 넘어가며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날따라 노을은 더 붉고 선명한 빛깔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컵을 들고 서 있거나 의자를 돌려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고요한 침묵 안에서, 무한한 하늘을 배경으로 빛과 구름이 만난 자리에서 주황색, 노란색, 빨간색들이 섞이다 회색과 진회색, 검은색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들과 모양들은 참으로 경이롭고도 아름다웠다. 나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온몸을 둘러싼 변화의 흐름과 기꺼이 하나 됨을 즐기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처럼 모든 것이 변화하기에, 언젠가 끝나기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순간을 더 후회 없이 느끼며, 함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사랑하며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이 가슴 깊이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이전 13화 <실천 편> 두려움 너머의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