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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아스쿨 Oct 01. 2022

나 이제 내가 되었네

삶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며 지구별을 다녔던 여정을 마칠 때쯤 묵게 된 숙소는 록빛 보리밭과 히말라야가 그림처럼 펼쳐진 곳이었다. 오랜 여행길에 고단해서인지 방에 들어서 짐을 푼 나는 나는 커다란 창문으로 가득 쏟아지는 햇살을 이불처럼 덮고 깜빡 낮잠이 들었다.


낮잠 속에서 떠나기 전에 반복적으로 꾸었던 꿈이 다시 시작되었다. 세상에 대홍수가 난 듯 빠르게 물살이 흐르고 있었고 그 속에서 세상의 모든 이들이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물에 빠진 상태에서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기도를 했는데 하늘에서 빛이 나더니 내 근처 어딘가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보였다. 신기하게도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조그마한 땅이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그것은 물 위에 떠 있는 바다거북이었는데, 계속 물 위에 떠 있어서인지 등껍질에 흙과 풀 같은 것이 있었다. 나는 거북의 등을 타고 올라앉았다.


그 순간 하늘의 빛이 통로처럼 내가 앉은자리에 드리워졌다. 강물에 빠졌을 때의 두려움과 절박함은 간데없고, 이내 평화롭고 충만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다시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내가 앉아있는 것 같은 바다거북 위의 땅이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소리쳐서 알리다가 꿈에서 깼다. 너무나 생생했던 꿈은 내게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동안 삶에서, 사회에서, 세상에서 허우적거리던 내게 더 이상 그렇게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삶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앉고, 서 있는 곳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진정한 사랑과 행복은 무엇인가?'

오래된 질문을 품고서, 나는 길을 떠났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연기하듯 휩쓸리며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나는 그 질문들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했다. 길 위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여러 경험들을 하면서 나는 마치 여러 지류를 받아들이며 넓고 깊어지는 강처럼 성장해왔다. 지구별이라는 학교에서 들었던 수업들은 내 삶을 변화시켰다. 앞선 글들에서는 '몸과 마음, 죽음, 일, 사랑, 행복'을 주제로 경험들을 정리해봤다.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뻗어갔다가 돌아온 나는 여러 배움들을 소화시키고, 체화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밖으로 답을 구하고 다녔던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내 안으로의 깊은 여행이 시작되었다. 심리상담 공부와 여러 내면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면서 나는 누구보다 나에 대해서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지난날의 내 삶을 돌아보면서 현재의 나의 행동이나 관계 패턴에 대한 원인을 알게 되었고, 미처 해결되지 못했던 나의 상처들을 보듬고 애도하는 과정들이 있었다. 내면 아이나 트라우마 등을 치유해가는 과정에서는 어둠의 순간으로 돌아가 다시 빛으로 나아가는 재탄생의 과정도 여러 번 거쳐왔다. 나선형으로 이어진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며 나는 여러 아픔과 고난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나 자신을 위로하고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나 자신을 판단하고, 검열하는 감시자가 아니라, 위로하고 사랑하는 친구가 된 것이다.  


내게 있어 자신이 된다는 건 내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지지자가 되어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죽음 앞의 생을 기억하며,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지금 여기에서 마음껏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누구나 말할 수 있는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아내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한 일이고, 앎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길을 걷기 위해 나는 계속 노력할 것이다. 그 길에서 내게 주어지는 역할들을 기꺼이, 기쁘게 해 나가며 말이다.


'나 이제 내가 되었네'라는 아래 시의 제목은 가장 나다운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나의 선언이자 다짐의 문장이기도 하다. 시에서처럼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거나, 사회의 기준에 흔들릴 때면 숨을 고르며 중심을 잡는다. 고요하게 서서 소중한 배움들을 떠올리면 나는 다시금 나의 진짜 얼굴을 되찾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나 자신으로 살아가며, 이 글들, 그리고 만남을 통해 이어진 사람들의 참모습도 맑게 비추는 거울이 되고 싶다. 각자의 자리에서 뿌리 깊은 나무처럼 고요히 선 사람들이 이 세상이라는 숲을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가꿀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을 그리고, 꿈꾸며 오늘도 기도한다.

나, 당신, 세상의 모든 존재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매일 이어지는 기도가 어둠을 채우는 풀벌레 소리처럼 자욱하게 세상에 퍼지는 고요한 밤이다.




나 이제 내가 되었네


                   - 메이 사튼


나 이제 내가 되었네

여러 해, 여러 곳을 방황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네

이리저리 흔들리고 녹아 없어져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마치 시간이 그곳에 서서 경고를

외치기라도 하듯

미친 듯이 달렸었네

"서둘러, 그전에 죽게 될지도 몰라"

(무엇을 하기 전에? 아침이 오기 전에? 아니면 이 시를 끝맺기 전에? 혹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안전한 사랑을 나누기도 전에?)


나 이제 고요히 여기에 서 있네

내 존재의 무게와 밀도를 느끼며

종이 위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는 내 손의 그림자

생각이 생각하는 자를 만들 듯이

단어의 그림자가

종이 위에 무겁게 떨어지는 소리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용해되어

소망에서 행동으로,

말에서 침묵으로 자리를 잡고


나의 일, 나의 사랑,

나의 시간, 나의 얼굴은

나무처럼 성장하는 강렬한

몸짓으로 모아졌네


열매가 서서히 익어 떨어지고

언제나 우리의 양식이 되듯

열매는 떨어져도

뿌리까지 시들지는 않듯

그렇게 모든 시가 내 안에서 자라

노래가 된다네

그렇게 사랑으로 만들어지고 사랑으로 뿌리내린

이제 여기에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은 젊다


지금 이 순간

나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아가네

아무 흔들림 없이

무엇엔가 쫓기던 나,

미친 듯이 달리던 나

고요히 서 있네, 고요히 서 있네

태양도 멈추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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