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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Jul 29. 2022

내 영혼의 단짝, 순수한 내 남편

어제는 아침 일찍 출장을 가느라 산책을 못했던지라, 오늘 아침 산책은 좀 더 기쁜 마음으로 시작해 보았다. 집에서부터 쭉 걸어가다가 남산도서관 입구 쪽에서 팔각정 아래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코스였다.


오르막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데 내 앞에서 올라가시던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손을 마구 흔드시는 것이었다. 아시는 분을 만나셨나?라고 생각하며 누구에게 손을 흔드는지 봤더니 저 위에서부터 사이클을 타고 내려오는 이들에게 흔들고 계셨다. 그들은 당연히 사이클 손잡이에서 손을 뗄 수가 없을 테니 답례를 하지 못했고, 설사 손을 뗄 수 있었어도 생판 모르는 할아버지가 자신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니 고마워서 답례로 나도 흔들어줘야겠다고 생각하기는 힘들었을 테다.


바로 뒤에서 아이처럼 순수하게 반갑게 손을 흔드는 할아버지를 뒤에서 보고 있노라니 어찌나 귀여우신지!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꺼내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찍어 보았다. 그러면서 예전에 나에게 새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손을 흔들어 주던 까만 아이들이 떠올랐다. 신발도 신지 않고, 옷도 아무렇게나 걸친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아이들이었지만 그 표정만은 어찌나 순수하고 어여쁜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던 아이들의 모습에 혼자 뭉클해서 눈물을 훔쳤던 기억.

귀여운 할아버지의 뒷모습

나는 순수한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다. 그냥 좋은 게 아니라 가슴이 벅찰 정도로 좋다. 그래서 아이들을 좋아하고, 내 남편을 좋아하나 보다. 저 사람들을 좋아해야지 하고 생각하기 전에 내 온몸이 순수한 영혼을 만나면 신이 나는지 입꼬리부터 올라간다.


어제 나에게 살포시 다가와 내 품에 폭 안긴 행운의 여신의 여파가 남아있었던지라 산책 시작부터 기분이 좋았는데, 순수한 영혼을 가진 할아버지를 뵙게 되어 내 몸은 땀에 절어 상쾌하지 않았지만 내 기분은 덩실덩실 춤을 추게 되었다.


친구들이랑 함께 있을 때 남편에게서 전화가 오면 나는 표정부터 금세 변해버린다.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남편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이 활짝 열리며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서로 자기~를 부르고 딱히 할 말이 없으면 그냥 몇 마디 하면서 웃다가 전화를 끊기도 하지만 남편이랑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냥 좋다. 나는 싫증을 잘 내는 사람인데, 아직까지 이 남자가 단 한 번도 지겹지 않은 걸 보면 인연은 인연인가 보다.


오늘도 일하는 데 전화가 와서는 지금 쿠바에 설탕이 없다고 하길래 내가 농담으로 "자기, 그럼 쿠바 사람들 이제 건강해지겠네. 쿠바 사람들은 설탕을 너무 좋아해." 그랬더니 코미디 프로에서 지금 설탕도, 식용유도, 커피도 없으니 쿠바 사람들이 건강해질 거라고 얘기했다며 깔깔깔 하며 웃길래 나도 웃긴다며 함께 마구 웃어댔다. 계란이랑 돼지고기는 내가 한국에 올 때에 비해서 10배 정도가 오른 탓에 먹기도 힘들다며 내가 지인을 통해 보낸 단백질 파우더를 아껴 아껴 먹고 있다고 하면서도 싱글벙글 웃으며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심각한 상황이지만 힘든 일을 함께 겪어왔기에 농담을 하며 웃을 수 있는 걸 테다.  


이제 벌써 7월도 막을 내리고, 이러다 보면 금세 남편을 만날 수 있으리라. 더운 여름이 지나 올 예정이라, 남편이 한국에서 가장 좋아했던 캐리비안 베이는 못 가겠지만, 올 겨울에는 진짜 눈을 볼 수 있겠지. 용평에서 본 가짜 눈에도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는데 하늘에서 내리는 진짜 눈을 보면 순수한 내 남편은 얼마나 감동받을까! 그리고 그런 남편은 보면서 나도 덩달아 순수한 소녀가 되어있을 테다. 남편의 첫눈을 떠올려보니 또 입꼬리가 씨익 하고 올라간다.


https://brunch.co.kr/@lindacrelo/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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