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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링수링 Jul 27. 2021

타고난 것, 물려받은 것, 운 좋게 알게 된 것.

나만 잘 안 되는 것 같을 땐



중학생 때 처음으로 영어 과외를 받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학원 보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된 엄마는 주변에 좋은 과외 선생님을 수소문해서 우리 집에 들이기로 했다.


나의 첫 과외 선생님은 남편이 운전해주는 까만색 고급차를 타고 다니는 할머니뻘 되는 분이었다. 그 차는 내내 아파트 주차장에 있다가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을 태우고 출발하곤 했다.


학교 선생님과는 비교도 안되게 무서웠지만, 나에게는 선택권이 있었다. 학교와는 다르게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결정권. 반대로 내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선생님도 그만둘 수 있는 결정권도 있었다.


수업 후 영어 숙제를 늘 내주셨는데 나는 그걸 미리 하지 않고 늘 과외시간 1시간 반전에 시작을 했다. 대충 그 정도면 외울 수 있었다. 나는 과외 횟수가 많아질수록 숙제를 시작하는 시간이 짧아져갔다.


이 세계 고수인 선생님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 너 같은 애들 알아. 머리 좋은 애들.

내가 오기 전 한 시간이면 다 외울 수 있으니까 그때야 시작하지? 왜 좋은 머리를 그렇게 쓰니? “


그랬나? 그냥 나는 공부를 하기 싫어서 선생님 오기 전에야 겨우 시작한 거였는데, 내가 머리가 좋다고?

그건 그렇고 내 속을 어떻게 저리 잘 알지?

아.. 불편해! 하기 싫어! 영어 과외 왜 해야 해?


늘 그랬다. 그렇게 나는 어떤 선생님과도 꾸준히 공부를 하진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숙제를 내주고 못하면 혼내고 수업하는 동안 왜 모르냐고 나를 타박하는 선생님을 싫어했다.


나는 머리가 좋은 애지 바보가 아닌데 말이다.


이런 자만심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차서 나는 노력도 안 하면서 상위권을 꿈꾸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_


20살


성적은 그저 그랬지만 그림 그리는 건 좋아했던 나는 일기예보의 좋아 좋아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생머리 휘날리며 신촌을 누비는 대학생이 될 거라고 ‘상상’ 하곤 했다.


결국 나는 내가 타고난 것, 물려받은 것, 운 좋게 알게 된 것으로 신촌을 누빌 수 있는 대학을 들어가게 되었다.


거봐. 나는 상상하면 된다니까?

그냥 바라고 꿈꾸면 그렇게 되는 거야. 역시 난 운도 좋고 실력도 있어. 다른 사람과 달라. 특별해.

게다가 난 잘 몰랐는데, 내가 예쁘데. 사람들이 자꾸 그렇게 나에게 말을 해. 나 정말 특별한가 봐.




자신감이 아닌 자만심으로 가득 찬 나는 그때부터는 뭘 해도 잘 되는 게 없었다. 실기 작업을 시작하면 교수님이 애정의 눈빛으로 봐주시긴 하지만 교수님이 기대하는 결과를 나오게 하는 건 힘들었다.  

그렇게 나에게 호감과 기대를 가졌다가 실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쉽지 않았다. 내가 시작할 수도 없고, 서로 진행을 함께해야 하며 나중엔 결과를 이해할 수 없어도 받아들여야 하는 연애는 어렵고 불편해서 피하고 싶었다.


내가 뭔가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타고난 것과 물려받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두 번째 20살


3개월 이상 뭘 하지 못하는 애였던 나는 그 사이 대학도 , 대학원도 졸업했고, 회사도 7년쯤 다녔으며 연애에 성공해서 결혼도 했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집안 일과 육아까지 해내고 있는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자괴감에 빠질 일이 없었다.



이렇게 되니 다시 자만심이 기어 나왔다.


난 뭘 해도 되는 사람이야. 타고난 것도 있고, 물려받은 것도 빛나. 게다가 운도 좋지.

너네가 아무리 노력해봐도 내가 가진 걸 갖진 못해.


난 상상하면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해도 그건 내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닌, 누구도 그렇게 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이런 생각이 나의 착각이며, 나의 게으름을 포장하는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안다.


이렇게라도 글을 쓰면 나의 자만심을 성실함으로 바꿀 수 있을까? 내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오늘은 간절하다.

다른 이들이 앞서 나가는 것 같을 때마다 나는 더 노력해야 된다는 마음의 소리를 기억해야 한다.


단지 타고난 것, 물려받은 것, 운 좋게 알게 된 것으로는 내가 상상하는 모습을 만들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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